Interview : 인터뷰
세상의 시선을 넘어선 ‘거인’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
에디터: 유대란 사진 Susanne Schleyer
마흔 살이 넘어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은 “타협하지 않는 진지한 문학 작가” “독일 소설가 중 맨 앞줄에 속한 작가”라는 수식어의 주인공이다. 그는 고전적 문체와 표현력으로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다. 『밧줄』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 출간된 소설 『거인』은 그가 2014년 독일에서 발표한 작품으로, 열아홉 살 생일에 키가 239cm를 넘은 후 세상에서 제일 큰 ‘거인’이 되어버린 한 청년의 일생을 그린다. 세상과 맞물려 살아보려던 주인공 틸만은 비정상적인 외형으로 좌절과 고통을 겪지만, 곧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격과 교양을 쌓는 데 힘쓴다. 자신의 기형적인 몸에 좌절할수록 내면에 집중해야 했던 거인의 이야기를 전지적 시점으로 묘사한 이 소설은 타인에 대한 비정상적 시선에 관한 현대적 우화이기도 하고,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자에 관한 성장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작가의 또 다른 직업은 외교관으로, 그는 현재 베를린의 독일 외교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리히텐베르크는 18세기 독일의 작가였는데, 위트 있고 역설적인 문구를 잘 쓰는 거로 유명한 사람이었어요. “낙인 찍힌 자들을 경계하라”는 평범하고 지루한 문장인데 리히텐베르크는 그것을 뒤집었죠. “낙인 찍히지 않은 자들을 경계하라.” 상식이 뒤집힌 것 같은 이 문구는 제 소설과 연관이 많습니다. 주인공 틸만은 비록 거인이라는 오명을 달고 살지만, 이야기 속에서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입니다.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 건 아니었어요. 그건 너무 단순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이 이야기는 패배자를 가장한 승자의 이야기로 보면 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이 승자는 특출난 인격을 갖췄죠. 아웃사이더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하자면, ‘아웃사이더는 다수와 다르다’가 대다수의 전형적인 시선이겠지만, ‘대다수는 아웃사이더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가 제 생각입니다.
기네스북 같은 데서 보기 드물게 키가 큰 사람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건 부끄러움과 의심이 섞여 있으면서, 한편 어떤 금욕주의적인 느낌과 차분함, 그리고 우월감 같은 것도 보이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어떻게 이런 표정이 나오는지, 특히 그 ‘우월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거인』을 쓰면서 답을 구해보고자 했습니다.
틸만은 복잡한 인물이에요. 그는 여러 모순되는 특성을 내재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분명 고결한 면이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다소 비열하게 타협하기도 하고, 한 번 이상은 자신이 경멸하던 것에 의한 혜택을 누리기도 하죠. 저는 좋은 문학이란 항상 인간의 다면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밝아 보이는 것에도 어두운 면이 있고, 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죠. 예를 들어,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윤리를 저버리는 흉포한 살인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는 독자로 하여금 연민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로 묘사했잖아요.
도저히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소설이 있습니다. 그런 소설을 쓰겠답시고 공부도 하고, 팔자에도 없는 여행도 하지만, 막상 책상에 앉으면 한 줄도 쓸 수 없습니다. 이대로 소설가 인생을 포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지나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만큼만 쓰자고 마음먹고는 써내려가다가 드디어 다 썼다고 생각하는 새벽이 찾아옵니다. 그때가 소설가로서 가장 좋은 순간이지만, 그 가장 좋은 순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다 쓴 소설을 프린트한 뒤에 책상에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 마십니다. 단숨에 한 캔을 다 마시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만족감이 몰려드는데, 그때가 가장 좋은 순간입니다.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되고 싶어서 소설가가 된 게 아니라서 앞으로도 후회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는 직접적인 대답을 드리기보다 틸만의 뒤에 숨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틸만이 삶에서 경험하는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 속에 조심스럽게 표현했고, 이야기 속 연약한 평형상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