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강요하지 않고 전달하는 법

에디터: 김지영
자료제공: 사물의비밀

아이는 그림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얻는다. 모르던 것을 아는, 알던 것을 새롭게 보는 과정을 통해 성숙한 자아와 인지능력을 키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그림책을 보여줘야 할까? 부모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야기를 짓고 그린 작가가 아이를 향한 소중한 마음을 아낌없이 책에 담았다면 두말할 것 없이 좋은 그림책이지 않을까?

넌지시 전하기
‘사물의 비밀’ 시리즈는 글쓴이가 자신의 아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 하나하나에 부여했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책 곳곳에서 엄마의 다정함이 묻어난다. 특히 『아기 북극곰의 비밀』은 환경을 주제로 잡았음에도 그림책 어디에서도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거나 강요하는 표현을 찾을 수 없어 글쓴이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이야기는 기름이 가득 든 찌그러진 깡통이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려지면서 시작한다. 깡통 틈으로 기름이 흘러나와 쓰레기통 안에 있던 다른 재활용 쓰레기들이 더러워지고, 재활용 공장으로 향하는 쓰레기들은 자신에게 묻은 검은 기름 때문에 재활용되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그런데 흘러내린 기름은 쓰레기통뿐 아니라 하수구를 통해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 결국 아기 북극곰이 사는 바다로까지 흘러간다. 검은 기름이 떠다니는 바다 위에 놓인 아기곰은 물고기가 없어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재활용 쓰레기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기곰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누군가가 버린 기름 깡통 하나가 쓰레기통 안은 물론이고 분리수거 차량 속 쓰레기들까지 재활용되지 못 하도록 하고, 아기 북극곰이 먹어야 할 물고기가 살 수 없게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안일한 태도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비효과처럼 보여준다. 또, 플라스틱이 자신이 만들어질 때 난 검은 연기 때문에 “토했다”고 말하는데, 버려지는 과정은 물론이고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환경이 오염된다는 사실을 넌지시 전한다.
그간 어른들에게도 자극적인 표현과 그림을 사용해 거부감을 들게 했던 몇몇 환경 관련 그림책과는 확연히 다른 면모다. 글쓴이는 강한 어조와 구체적인 표현, 확실한 결론을 피하고 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그 후의 이야기를 스스로 상상하고 문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누군가의 개입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으로 판단하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진심에서 우러나는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잘 가라, 플라스틱: 불편하지만 지구를 살리는 즐거운 이별
바쁜 생활에 매일 장을 볼 수 없으니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면 신선한 먹거리를 아침 일찍 받을 수 있다. 상하지 않게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팩을 넣어 은박보랭 주머니에 담은 것도 모자라 무르거나 다치지 말라고 감싸고 덮어 견고하고 두툼한 종이 혹은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 접착력 좋은 테이프로 붙여 준다. 재사용을 위해 포장재 회수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다음 주문 때 상자와 아이스팩을 문밖에 내어놓으라는 안내문이 눈에 띈다. 그래도 죄책감은 어쩔 수 없으니, 재활용과 재사용이 불가능한 테이프, 스티커, 부직포 등의 양이 이미 엄청나기 때문이다.
비닐과 플라스틱이 선사한 편의는 내 게으름과 귀찮음은 물론이고 허영심까지 슬쩍 해결해주었지만, 그로 인해 나와 내 가족과 이웃, 이 행성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많은 생명체는 병들어 죽어간다. 플라스틱 조각들은 마치 형형색색 독버섯처럼 피어 지구의 숨통을 조이니 끔찍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플라스틱의, 플라스틱에 의한, 플라스틱을 위한 (에디터 전지윤)
플라스틱이 지구와 생명체를 위협하는 단 하나의 원인은 아니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일회용품 폐기물은 가히 재앙이라 할 만하다. 지구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는 바다까지 흘러들어왔고, 이 조류를 타고 쓰레기들은 소용돌이치듯 이곳저곳에 모여 지도에는 없는 섬을 만들어 떠다닌다. 일회용 빨대나 포크가 코에 꽂혀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 목에 걸린 플라스틱 고리가 살에 파고들어 괴로워하는 물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말라 죽어가는 북극곰,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 차 죽은 갈매기의 사체를 본 적이 있는가. 가여운 모습에 마음이 아픈 것도 잠시, 삶의 편의를 포기하는 일은 어렵다.
2018년이 시작되자마자 중국은 폐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폐지에 이르는 고체 폐기물의 수입을 전면 중단하였다. 같은 시기에 국제유가하락이 겹쳐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되자 국내 재활용 업체들도 폐기물 수거를 거부했다. 썩지도 않고 재활용도 안 되는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가는 것을 보며 위기감이 느껴진다. 우리는 우왕좌왕하는 환경부에 사태의 책임을 물었고, 폐기물 수거 및 재활용 업체의 무책임을 마음껏 비난했다. 그러나 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연간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량을 자랑하며 연간 약 420개의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위업을 이룩한 한국인이다. 핀란드의 100배에 이르는 플라스틱과 비닐을 사용하는 우리가 이 쓰레기 대란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물질적 풍요를 넘어 과잉의 시대를 사는 일회용의 세대이자 간편의 세대이며, 내 부모와 그 이전 세대의 절약습관과는 거리가 멀다. 눈부신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를 살며 클릭 한 번이면 살 수 없는 것이 없고, 아껴 쓰고 고쳐 쓰는 대신 금방 새것을 살 수 있어 소중함이나 아쉬움은 다소 부족하다. 내가 속한 이 세대가 생산해내는 폐기물의 양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많다. 이제 우리가 사는 환경은 한계점에 다다라 매일 아침 숨 쉬는 공기의 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내가 버린 플라스틱은 작은 조각이 되어 내 아이가 먹을 생선의 배 속을 채운다. 넘치는 풍요에도 불구하고 취할 것이 마땅치 않음은 다른 누구를 비난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탓이다.

May19_TailofT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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