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 People 책 속 이야기 사람

Retrospective David Bowie
1947~2016

에디터: 지은경, 세바스티안 슈티제 Sebastian Schutyser
사진제공: 그로닝거 미술관(Groninger Museum),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Victoria & Albert Museum)

데이빗 보위는 음악의 흐름과 팝 패션에 흔적을 남긴 예술가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자기 자신과, 음악을 미디어를 통해 개혁해나갔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예술, 영화, 패션, 스타일을 펼쳐왔고 자신의 성적 탐구, 사회적 논평 등 그가 행한 모든 것들은 그의 예술가적 지위를 상승시켜왔다. 그는 그 어떤 팝 아티스트보다도 깊이 있는 다이내믹함을 우리에게 선사했고 매우 놀랍고도 특별한 소리와 끝없는 비전의 세계에 기거했다. 지난 1월 8일, 그의 69번째 생일에 발매된 최신 앨범 ‘블랙스타(blackstar)’는 그의 극적인 발언들과 음악을 향한 도전과 도발이 아직 시들지 않았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전 세계는 그의 전위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에 대해 걸작이라며 극찬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가족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그가 18개월 동안 암 투병을 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놀랍게도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시간을 음악으로 끝맺으려 했다. 그의 음악 인생을 한번 되짚어보자.

A Space Oddity
“나는 인스턴트 스타. 물을 붓고 저으시오.” 데이빗 보위, 데이빗 로버트 존스(David Robert Jones)라는 평범한 이름의 그는 1947년 영국 런던의 남쪽에 위치한 브릭스톤에서 태어났다. 1962년 젊은 시절, 여자 문제로 주먹 싸움을 벌인 그는 왼쪽 눈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동공이 확장되어 홍채를 가리게 되자 눈동자의 색이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오드아이는 그를 희귀한 존재로 만들어주었고 이름을 널리 알리는 뜻밖의 효과를 가져왔다. 이제 누구나 데이빗 보위라는 이름을 듣게 되면 그의 오드아이를 떠올린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형과 이복 누나들이 있었는데, 정신분열증을 앓는 형과 한동안 함께 살았다. 이 경험은 이후 보위가 시도한 다양한 페르소나의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했다. 유년기 시절부터 그는 독서와 음악에 열광적으로 미쳐 있었다. 그는 사회가 가진 문제와 형태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생각해보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시도는 그의 음악을 통해 나타난다. 그는 대중과 사회를 향해 독설을 퍼붓기로도 유명했고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발언했다.

“사람들은 정말이지 너무도 어리석어요. 이제 아무도 글을 읽지 않아요.
아무도 밖으로 나가 사회와 문화를 주시하거나 탐험하려 든다거나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죠.
사람들은 그저 물컵만큼의 얕은 깊이로 약 5초간의 주의를 기울이곤 눈을 돌려버려요. 그게 다예요.”

음악을 통해 초기부터 그의 재능과 야망은 명백하게 빛을 발했다. 1969년 7월 보위는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를 발표했다. 이 곡은 먼 우주로 떠나려는 여행자의 긴장된 순간을 그리고 있다. 안락한 삶으로부터, 미지의 먼 곳을 탐험하려는, 용기를 내어 지금의 모든 것을 박차고 나가려는 내용은 늘 새로운 시도를 펼치는 한 예술가의 전조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 곡은 그에게 상업적인 성공의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아폴로 호가 달에 착륙하는 사건을 계기로 ‘스페이스 오디티’는 영국 차트 탑 히트 5위에 올랐다.
이듬해는 보위에게 매우 중대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의 형 테리가 정신병원에 들어갔고(이후 1985년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보위의 예술적인 능력은 한층 진보했다. 하드록을 시도한 ‘세상을 판 남자(The Man Who Sold the World)’는 그의 작곡 능력과 퍼포먼스의 재능을 입증할 수 있는 앨범이 되었다. 앨범의 테마는 불멸, 광기, 살인과 신비주의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그것들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마주치는 팝스타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또한 긴 드레스를 입은 보위의 모습, 성적 모호성의 표출, 성적 취향에 대한 실험 등은 그를 더욱 다른 팝 아티스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에 머물게 했다.

Ziggy Stardust
“나는 천성적인 성욕 충만한 책벌레다.”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radust)’는 보위가 창조한 한 페르소나다. ‘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으로부터 온 거미들(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을 통해 보위는 본격적인 공상과학 캐릭터로 등장할 수 있었다. 은하계 글램 록 스타가 지구 행성에 찾아온다는 내용의 스크립트는 보위 자신의 창작물이었고, 이 앨범은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그의 히트 싱글인 ‘스타맨(Starman)’ 또한 즉각적인 성공을 가져왔다. 그는 매혹적인 무대의상과 성적으로 매우 도발적인 공연을 치러냄으로써 비틀마니아 이후 최고의 정열적이고도 파격적인 무대라고 칭송받았다. 그러나 1973년 7월 보위는 새로운 활동을 계획하기 위해 ‘지기 스타더스트’의 종말을 고했다. 그의 활발한 창작 활동에는 그의 독서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는 조지 오웰의 『1984』를 악의적인 뮤지컬 버전으로 구성한 콘셉트 앨범인 ‘다이아몬드 독(Diamond Dogs)’을 발표했다. 그 이전에는 전이적인 커버의 앨범인 ‘핀업Pin Ups’을 내놓았다. 뒤이어 그는 ‘반역자 반역자(Rebel Rebel)’과 ‘트랙스(tracks)’로 더욱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상습적인 코카인 흡입과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중압감으로 인해 그는 편집증을 보였고 그의 몸은 수척해져갔다. 그는 차츰 펑크와 소울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1975년 완전한 소울 앨범 ‘영 아메리칸(Young Americans)’의 발표는 그에게 미국 톱 차트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보위의 광란적 창의력은 그에게 돈과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위기를 가져다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코카인 중독이 점점 심해지자 그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1975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히틀러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으며,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station to station)’ 투어 중에는 스톡홀롬에서 “영국은 파시즘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나치식 경례를 하고, 그가 살던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그 엿 같은 동네는 지구 표면에서 지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등 잇단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후 그는 “약물로 인해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매우 후회한다”라며 사과했다. 투어 중 그는 제작 과정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도 있다.

전시 정보: David Bowie is...
2013년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에서 시작된 ‘데이빗 보위 이즈(David Bowie is…)’ 전시는 뒤이어 토론토와 상파울루, 베를린, 시카고, 파리, 멜버른 등의 도시를 돌며 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데이빗 보위의 시대별 음악의 변화와 열정, 그가 출현했던 영화와 무대의상, 그의 필체가 담긴 작업 노트, 그의 페인팅 작품, 그의 무수한 행적들, 그리고 그가 이 사회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이 전시된 ‘데이빗 보위 이즈’전은 현재 네덜란드의 그로닝거 미술관(Groninger Museum)에서 2016년 4월 10일까지 개최된다. 이후 전시는 2017년 일본을 여행할 것이다.

003_article_inside_01

Please subscribe for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