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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노래들,
1980~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마스터피스

에디터: 유대란
사진: 페이퍼레코드 제공

식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청춘과 음악을 연관 지을 수밖에. 세대별 청춘이었던 시기는 서로 다르겠지만, 음악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이 각자의 청춘 시절이었다는 점만은 공통될 것이다. 청춘은 음악을 필요로 하고, 음악은 청춘을 소환한다. 1950년대에 태어난 부모님 세대는 사이먼앤가펑클이 나오는 빵집을 드나들었고, 양희은의 목소리로 그 시절을 기억한다.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조피디의 가사를 외우며 밤을 새웠고, 스매싱펌킨스를 귀가 찢어질세라 들으며 자율학습시간을 때웠다. 전 세대의 청춘이 포크(folk)로 물들었다면, 그 자식 세대는 얼터너티브(alternative)로 칠해진 10대를 살았다. 각자의 시절에는, 그만의 음악이 있었다.
그 시절은 음악으로 기억되고, 음악은 그 시절을 대변한다.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음악들도 있다. 우리는 부모 세대가 젊었던 시절에 듣던 들국화를 듣는다. 그런데 복고의 유행이 후기산업사회의 두드러진 한 특징이라고 봤을 때, 그리고 대략 30년을 주기로 그것이 돌아온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 우리는 다음 질문 앞에서 조금 망설이게 된다. 우리는 정말 들국화가 좋은 것일까, 아니면 들국화가 오래돼서 좋은 것일까? 마스터피스의 기준은 오래 살아남은 것일까, 아니라면 오래 살아남아서 마스터피스로 등극하는 걸까. 『청춘의 노래들』의 저자 최성철은 시간차와 개인의 경험이 투영된 음악에 대한 감흥, 그리고 개별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역량과 시대성의 포용을 기준으로, 이런 음악 팬들의 고민을 갈무리해준다. 각자의 푸르렀던 시절은 달라도, 누구에게나 푸릇한 음악들, 그는 그것을 마스터피스라고 부른다.

“그것만이 내 세상”
교복에 교모를 쓴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나는 달리는 콩나물시루였던 통학버스에서 난생처음 어떤 노래를 들었다. 심장이 고동쳤다. 몇 사람 건너 새침하게 서 있는, 늘 내 마음을 흔들던 여학생도 안중에 없었다.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화살이었다.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와 천둥 같은 드럼, 비장하게 떨리는 기타 사운드는 그때까지 듣던 가요와 확연히 달랐다. 충격이었고 다른 세상의 발견이었다. 그 버스에서의 기억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지만, 그날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순간이었음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청춘의 노래들』의 저자 최성철은 인생의 중요했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여느 날들처럼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가던 그 하루는, 전인권의 목소리가 화살처럼 가슴에 꽂힌 순간, 결코 다른 날들과 같을 수 없었다. 전인권의 목소리를 알게 된 이상 그날 이후도 전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전인권처럼 삶의 힘겨운 순간들을 수긍할 수 있게 해준 목소리들, “내면을 솔직하게 밖으로 불러낸” 음악의 주인공들에게 인생의 빚을 졌다. 그 빚 때문에 음악을 업으로 삼고 살아왔다. 현재 페이퍼레코드사의 대표인 그가 들려주는 한국 대중음악의 마스터피스는, 대중음악이 대중문화의 패권을 차지했던 빛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시대이자, 음악적 다양성이 폭발했던 시대였던 1980~1990년대의 음악들이다. 이 시기는 1980년대 이전과 2000년대의 대중음악과 맺고 있는 연관성에서도 특별하다. 그때는 1970년대라는 시대적 암흑 속에서 음악적 예술을 갈고 닦았던 예술가들이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고, 2000년대의 케이팝의 미래를 준비했던 한국 발라드의 부흥기라는 점에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최성철이 선택한 이 시기의 음악들은, 당시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했든, 대모에 앞장섰든, 황혼기에 접어들었든, 그 누구든, 어디서 다시 듣는다 해도 “내가 누구였고 또 누가 되려 했는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청춘의 노래들, 좀처럼 나이 들지 않는 음악들, 다른 말로, 마스터피스들이다

현재진행형인 신화, 조용필
10집, 11집

2013년 조용필의 19집 앨범 ‘Hello’가 나온 후, 수록곡 ‘바운스’가 한 술집에서 흘러나온 날을 기억한다. 60대에 접어든 조용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신선했고, 그의 음악은 어떠한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왕은 여전히 자기혁신 중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인의 지친 마음을 시적인 가사와 구성진 멜로디로 보듬어주었던 조용필은 일찍이 신화가 되었지만, 세대를 초월한 음악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름의 가치를 보증하고 있다. 그의 10, 11집은 조용필의 음악생활 2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앨범이다. 재즈적 색채를 가진 록 앨범이 Part1으로 먼저 나왔고, 성인을 위한 트로트 앨범인 Part2가 후에 나와 11집으로 불리고 있다. 10집은 조용필의 음악성과 보컬이 원숙미의 경지에 도달한 앨범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 발매되었고 ‘서울 서울 서울’, ‘모나지라’, ‘목련꽃 사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조용필의 프로듀서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앨범이라 인정받고 있다. 이듬해에 나온 11집은 좀 더 대중적인 취향을 건드리고 있다. 지구레코드사와의 마지막 앨범이 된 11집은 ‘Q’를 타이틀곡으로 한다.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 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 /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에서 나 홀로 / 우리의 추억을 태워버렸다….”

한국적 감성의 블루스의 창시자, 신촌블루스
1, 2, 3집과 라이브앨범

한영애, 김현식, 정서용, 정경화 이은미, 강허달림 등 걸출한 아티스트들이 거쳐 갔거나, 이들을 배출한 신촌블루스는 신촌에서 블루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주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이들은 한국적 정서를 담은 블
루스 장르를 개척했다. 1970년대 중반, 가수 이정선과 기타리스트 엄인호의 만남으로 시작되었고, 엄인호가 당시 다양한 예술가들이 만나 교류하던 신촌의 카페 ‘레드 제플린’을 인수하며 음악인들을 끌어모았다. 1988년 데뷔 앨범에는 엄인
호가 가장 아끼고, 한영애가 리드보컬을 맡은 ‘그대 없는 거리’, 신중현 사단의 보컬이었던 박인수가 참여한 ‘나그네의 옛이야기’와 ‘봄비’, 이 음반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아쉬움’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89년에 공개한 2집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이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했고, 김현식이 ‘환상’과 ‘골목길’을 불렀다. 2집 음반의 성공에 힘입어 라이브 앨범 ‘Love At First Sting Tour 1989’가 나왔고, 이 실황 앨범은 들국화의 라이브 앨범과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계의 양대 실황 명반으로 평가된다. 3집부터는 이전의 한영애, 정서용에 이어 정경화, 이은미가 참여해 절창을 들려줬다. 엄인호의 음악적 역량이 충분히 발휘된 3집은 세련되고 대중 친화적인 블루스를 담고 있으며, 신촌블루스가 대중적 성공을 거둔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영원한 인텔리겐치아 양아치, 신해철
무한궤도, 솔로 1집

신해철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많은 사람이 새삼 그의 존재감이 자신 안에 얼마나 깊고 넓게 자리했었는지 실감했을 것이다.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했고, 사회의 모순에 거침없이 반응했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공명한다. 무한궤도의 신해철이 1988년 MBC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를 불렀을 때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조용필은 그의 음악적 잠재력을 알아봤고, 대영기획의 유재학 대표를 소개해줌으로써 무한궤도의 앨범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줬다(이때 앨범준비를 위해 영입된 멤버가 이후 015B를 이끈 정석원이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이 된 것은 ‘여름이야기’,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였지만, 정석원이 만든 ‘어둠이 찾아오면’과 적극적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접근을 시도한 ‘끝을 향하여’와 ‘움직임’은 밴드의 가능성을 높이 끌어올렸다. 이후 학업 문제와 음악적 견해 차이로 혼자 남게 된 신해철은 첫 솔로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로 하이틴 스타로 등극했지만, 그는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하며 음악적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전통적인 록 세션 대신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곡들을 선보였고, 곡 중간에 랩을 시도했다. ‘연극 속에서’와 같은 곡은 넥스트의 예고편이고, ‘고백’은 그만의 발라드 세계의 시작이었다. 이 앨범은 훗날 그가 보여준 음악적 지평의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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