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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서 Come Together

에디터. 지은경 자료제공. © Gestalten

최근 병환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어머니가 돌보던 장애인 언니, 그리고 11년째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의 건강 문제를 홀로 감당해야 했다. 내 개인 사정도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끝없이 소진되는 느낌을 받자 삶이 소멸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 순간 상상한 것은 “내게 형제자매가 많았더라면, 집안의 대소사를 긴밀히 상의할 수 있는 집안의 어른들이 있었더라면, 과도한 중압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였다. 가족의 수가 적은 것이 편하고 좋다는 믿음은 대가족의 북적북적한 분위기에 대한 부러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촌과 친구들이 가족처럼 내 곁에 머물러주었고, 모르는 것을 알려주었고,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서 서로 돌봐 준다는 것은 어쩌면 흐뭇한 베풂의 미담으로만 끝날 일이 아닌,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전략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여러 세대가 한 지붕 아래서 살았다. 조부모와 부모, 어린 아이들, 때로는 이모나 고모, 삼촌까지 한집에 모여 살기도 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핵가족화는 모든이들의 독립적인 삶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서구 사회에서 혼자 살거나 단출한 가족 단위로 살아가는 일이 보편화 되기 시작했고, 전 세계인의 라이프 스타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50여 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문제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는 반대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수입의 불균형으로 인해 젊은 부부들이 작은 집 하나도 장만하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혹은 그 이후에라도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가 신세를 지며 사는 젊은이가 늘어나기도 했다. 이는 젊은 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들의 조부모 역시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다. UN의 한 조사에 따르면 2050년 지구의 인구 6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며, 우리는 곳곳에서 노령화 사회가 던지는 수많은 문제점을 목격할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이들을 위한 복지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많은 이점이 있다. 대가족이 살 수 있는 큰 집 한 채의 가격이 작은 집 여러 채의 가격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구성원들은 더욱 넓은 공간을 누릴 수 있으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각종 요금과 식비를 절약할 수 있다. 노인 세대는 일상의 돌발적인 위험 요소로부터 젊은 세대의 보살핌을 받고, 가족과 함께 하는 생활은 노년기에 들이닥치는 우울증과 노령화 사회에서 가장 우려되는 고독사를 예방한다. 장애인 또한 고립되지 않고 가족에게서 필요한 도움과 배려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어린이들은 다양한 세대의 가족 구성원과 어울리며 일찍이 예의범절을 습득하고 사회성을 기르고, 학생들은 앞선 시간을 살아온 장년층과 노년층으로부터 학업은 물론 사회생활에 관한 유용한 조언을 얻으며 성장하게 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기지를 둔 클라우스 옌센(Claus Jensen의 RUM architects) 건축사무소는 이렇듯 젊은 가족 구성원들과 어린이, 노인, 학생들이 함께 모여 사는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불렀다. 그리고 1972년, 이 건축사무소는 서른다섯 가족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27개의 개별 공간과 공동생활 공간을 선보였다. 오늘날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가 1970년대 덴마크의 일반적인 일상 풍경을 만들어 냈던 이 예시를 다시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세대가 함께 하는 생활 양식은 1970년대보다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역사에서 지배적인 생활방식은 다세대가 모여 살며 협동하고 조화를 이루는 형태였다. 하카토루(Hakka Tulou)(흙으로 크게 에워싼 사각형이나 원형의 건축물로, 하나의 문을 가지고 다수의 집들이 중앙의 공동 마당을 나누어 사용하는 형태)에서부터 로만 도무스(Roman Domus)(로마의 귀족들이 살았던 집으로, 단순히 집의 역할을 넘어 비즈니스와 종교회의 등이 열리던 곳)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여러 가족의 친교 안에서 함께 살아왔고, 산업화 시대가 되어서야 다세대의 공동체 생활에서 멀어졌다. 이전에는 농업 경제에 의존해 가족구성원이 평생 함께 살면서 땅을 돌보고 서로를 보살필 수 있었던 반면, 19세기의 대가족은 더 작은 단위로 쪼개졌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그들의 고향과 대가족, 이웃들을 뒤로한 채 도시로 떠났다.
그러나 오늘날 새롭게 대두되는 다세대 공동체의 생활 방식은 새로운 삶의 모델로 모든 세대에게 품격 있는 삶을 선사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노인들은 젊은이들로부터 활력을 얻을 수 있으며 맞벌이 부모들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가 한집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혼자만의 시간, 사생활을 갖는것은 불가능하고, 모든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의 결정을 다 함께해야 한다면, 개인의 개성과 취향은 존중될 수 있을 까? 이득과 동시에 감내해야 하는 수많은 문제를 마주함으로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그 해결책은 곧 집의 구조가 스마트해지는 것에 있다. 개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동시에 소통할 수 있는 공간, 다 함께 모여 안정감을 유지하지만 적절한 거리감을 둠으로써 독립성을 유지하는 구조, 즉 다 같이 모여 살기 위한 아름답고도 스마트한 건축이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할 새로운 생활 방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Come Together』에서 소개하는 집들이 보여주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수많은 것들을 나눔과 동시에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충실히 살 수 있도록 신중하게 고려한, 새로운 전통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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