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s of Life : 삶의 아틀라스

로도피 산맥에 선 마지막 남자

에디터. 지은경
사진. ⓒ Valery Poshtarov

로도피 산맥(Rhodope Mountains)은 불가리아 남부와 그리스 북동부에 15,000km²에 걸쳐 펼쳐진 산맥이다. 깊은 협곡, 드넓은 녹지 언덕, 울퉁불퉁한 봉우리와 호수, 그리고 남동쪽의 화산지대 등 다양한 지형으로 이뤄져 있으며,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바카이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산맥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투르크 지배를 피한 슬라브인들의 피신처가 되어주었고, 슬라브 문화의 요람이기도 해 이 지역에는 아직도 전통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불가리아 사진 작가 발레리 포슈타로브(Valery Poshtarov)는 로도피산맥을 14년간 방황하며 오래전부터 산 속에 터를 잡고 살아온 985개의 마을을 발견했다. 그러나 산맥에서의 삶은 이제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95%의 인구가 감소했고, 이곳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이미 마을을 떠난 지 오래다.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대부분의 마을엔 신의 자비와 망각에 기댄 낡은 빈집들이 늘어서 있다. 포슈타로브의 사진집 제목 『The Last Man Standing in the Rhodope Mountains(로도피 산맥에 선 마지막 남자) 』가 안타까운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이 책은 로도피 산맥에서 모여 살던 전 세대의 모습과 동시에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작가는 거의 천 개에 달하는 마을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세월이 흘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모습들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오르페우스는 같은 산에서 아내 에우리디케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그의 노래가 너무나 매혹적이고 그의 헌신이 너무나 절대적이었던 나머지 지옥의 신들은 그가 에우리디케를 다시 데려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지하세계 밖으로 에우리디케를 인도하는 동안 절대 뒤를 돌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지상의 빛을 보기 전, 뒤를 돌아봄으로써 그의 아내를 영영 잃고 말았다. 그는 과거를 현재와 분리하여 삶을 영원의 표현으로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포슈타로브는 로도피 산맥에서 사진 촬영을 하며 점차 과거를 영원히 잃어버린것으로만 인지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거주했던 수많은 세대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작가의 사진에는 어린 아기, 천진난만한 소년들과 젊은 청년, 그리고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로도피 산맥의 현재 모습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이 듬뿍 담겨있다. 이는 에우리디케를 다시 잃지 않기를 바라는 오르페우스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로도피 산맥에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각자의 의무와 역할을 묵묵히 해내며 살아간다. 대
도시의 문명과 단절된 그들의 삶에는 세대 갈등이나 서로를 향한 멸시나 차별도 없다. 그들의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래왔듯, 오늘의 이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갈 뿐이다. 대다수가 떠난 마을에 남은 소수의 주민은 모든 방문객을 가족처럼 맞이한다. 고독과 자연의 혹독함을 터전 삼아 대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그들은 어쩌면 인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자랑스러운 전형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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