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9

당신은 젠틀맨입니까?

Editor. 지은경

버텨보려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애티튜드』
강윤주 지음
주식회사책

고등학교 다닐 때 예의범절을 배운다는 이유로 생활관이라는 곳에 2박 3일 동안 전교생이 들어가 있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복을 입는 법부터 한복을 입고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앉을 때 손을 모으는 방법, 술과 차를 따르는 방법, 그리고 김치를 비롯한 몇 가지의 한식을 요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그곳에 들어간 시점부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했다. 56시간에서 48시간, 시간이 흐르고 흘러 2시간 남짓했을 때까지도 얼른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유독 여학생들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 이 사회의 우중충하고 음흉한 속내가 어린 내 마음에 그대로 비쳤던 것이었을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괴로운 기억뿐이다. 보통은 반 아이들끼리 한방을 쓰며 밤을 같이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여행이라고, 그래서 즐겁게 받아들이게 마련인데 그곳에서의 짧은 시간을 고문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예절을 가르치는 곳에 샤워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는 사실 또한 지금 생각하니 경악스럽다. 수돗가에서 찬물로 겨우 얼굴과 손을 씻고 이를 닦는 정도만 허용되었는데, 그러면 정말 가장 청결해야 하는 중요부위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었을까? 그런 곳에서 예절이라는 것을 반강제적으로 배우니 우리 사회에 예절에 대한 진중한 고민 따위의 습관이 있을 리 만무하다.
애티튜드에 대한 책을 만들기로 결정하기 전 작가가 미리 만들어 지인들에게 돌리던 설문지를 접하게 되었다. 100개의 문항 중 과연 나는 몇 점의 젠틀맨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나는 속으로 ‘모르긴 몰라도 80점 이상은 받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70점도 제대로 안 나온 것이 아닌가! 예절에도 사람마다 시각차가 있으니 누구나 일률적으로 모든 예의범절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이 점수는 좀 심하게 안 나왔지 싶었다. 이 얘기를 저자에게 했더니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래도 70점 가깝게라도 나왔다면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은 쪽에 속해요.” 그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며 하루하루 충실하고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너무도 많은 디테일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심하게 예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책 『애티튜드』를 읽으며 그 의미를 찾고 싶었다.
우선 “무엇에 관한 책인가요?”라는 질문에 ‘예절’ 혹은 ‘태도’ 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답하면 많은 사람의 표정에서 호기심이 싹 사라자는 것을 느낀다. 이 역시 새롭고도 충격적이다. 우리는 정치와 사회 문제, 환경 문제와 인종차별, 남녀평등, 동물 사랑 등 수많은 아이디어와 이데올로기, 의견으로 대립하며 논쟁을 펼치는데 정작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와 타인의 관계를 위한 ‘애티튜드’에 관해서는 한심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왜? 그래도 세상은 살아지니까. 그런데 그래도 과연 괜찮은 걸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가 올바르게 서면 우선 자아를 향한 사랑이 넘치게 된다. 그 이후 나를 둘러싼 나와 비슷한 다른 자아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게 결국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왜냐면 나를 비롯해 타인을 존중하며 어떤 대립과 다른 의견도 기분 좋게 해결할 막대한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책은 단지 외면으로 갖추어야 하는 예절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도록 좋은 생각과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추기를 또한 권하고 있다. 이러한 나와 타인의 존중의 관계가 성립하고 생각이 정립된 사람은 사실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비굴하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다. 우리는 사실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보다 그렇지 않아도 말에서, 행동에서, 그 사람의 표정에서 광채가 나는 사람을 목격하고 매력을 느낄 때가 훨씬 더 많으니까.
각종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의 예의 없음, 불손하고 건방짐, 혹은 ‘될 대로 되라’ 식의 무심함을 수도 없이 목격한다. 사회는 애티튜드에 대한 고민이 없으니 강자는 약자를 멸시하고 조금 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에게 불친절하거나 경멸의 표정을 보낸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절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허황되고 잘못된 것이 많은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 중요한 예절이 된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분위기가 가능한 사회의 본질이야말로 저속하기 이를 데 없는 천민주의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 심리학 교수가 남에게 불친절하고 예의 없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더 나은 위치에 있거나 잘난 사람이라기보다 예절 교육을 못 받아 사회적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이거나 단순히 머리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우선 책에서 안내하는 대로 나의 예절 점수를 매겨보자. 그리고 만약 점수가 낮게 나왔다면, 그 원인이 교육의 부재였는지 혹은 단순히 머리가 나쁘기 때문인지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