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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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8

안녕, 길고양이

Editor. 박소정

고양이처럼 귀가 밝고, 야행성이며, 창밖 구경을 좋아한다.
고양이처럼 만사태평하고 주관이 뚜렷하며 늘 아름답기를 소망한다.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이용한·한국고양이보호협회
지음북폴리오

‘언젠가 인연이 나타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묘연을 기다린 지도 몇 해가 지났다. 그동안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수북이 쌓였다. 당장 하늘에서 고양이가 떨어진다면 당황하지 않고 ‘넌 참 행운아인 줄 알아라’ 하며 최고의 집사가 되어줄 자신이 있었다. 이런 집요함에 하늘도 지친 것일까, 지난 연말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같은 지역에 사는 베테랑 우연히 집사에게 입양제안을 받은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를 잃은 길고양이 남매를 보호하고 있던 그녀는 집에 사는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입양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당일 운 좋게도 고양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낯을 가릴 법한데 두 마리 모두 곁으로 다가와 얼굴을 비비고 ‘갸르릉 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묘연인가?’ 마음이 분주해지면서 과연 내가 훌륭한 집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데려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1인 가구로서, 아등바등 월세를 내는 세입자로서 집사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모험이 애꿎은 고양이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마음을 접게 됐다. 고민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속상한 마음도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환경이 준비될 다음 날을 기약하며 결심했다. 주저앉아 슬퍼할 힘으로 길고양이를 더 열심히 돕자고 말이다.
길고양이에 대한 막연한 동정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생각을 꼭 함께 나누고 싶었다.

이런 결심을 누가 듣기라도 한 듯 올해 초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라는 책이 나왔다. 고양이 작가로 유명한 저자 이용한과 한국고양이보호협회가 몇 년간 준비 끝에 선보인 책으로, 도심 생태계 일원으로 자리 잡은 길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한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방법부터 길고양이를 올바르게 입양하는 법 그리고 길고양이로 인한 다툼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법, 고양이 톡소플라스마와 임산부에 대한 오해까지 길고양이에 대한 모든 것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고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선됨에 따라 고양이에 대한 시선이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길고양이의 경우는 여전히 예외에 속한다. 아직도 많은 길고양이가 도둑고양이라 불리는 것이 증거다. 실제 국어사전에도 길고양이 대신 도둑고양이가 표준어로 올라가 있다. 본래 ‘주인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몰래 음식을 훔쳐먹는 고양이’를 일컬어 도둑고양이로 부르다 지난해 말 ‘사람이 기르거나 돌보지 않는 고양이’로 그 뜻이 바뀌었지만, ‘도둑’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하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이를 두고 국내에서 ‘캣맘’ 혹은 ‘캣대디’라고 부르는 것에서 역시 길고양이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참고로 영어권 국가에서는 길고양이를 돌보고 밥을 주는 일이 흔한 일이어서 특별히 지칭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 이 용어를 쓰지 않는다.
반면 고양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무작정 길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생각보다 더 위험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냥줍’이라고 불리는 이 행동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불쌍한 고양이를 구제해주었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납치 당해 집이라는 감옥에 갇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하루아침에 자유를 잃은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질병에 걸리거나 적응에 실패해 죽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때문에 길고양이를 들이고 싶다면 우선 시간을 들여 교감해 어떤 성격인지 파악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동시에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이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깊이 생각해 해봐야 한다. ‘최소 15년 이상 고양이를 책임질 수 있는가?’ ‘고양이에게 필요한 용품과 유지비 외에 아플 경우까지 대비한 지출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가?’ ‘집안에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양이를 돌보고 함께 놀아줄 시간과 여유가 되는가?’ 진짜 고양이를 사랑한다면 이런 고민이 충분히 이루어진 후에 입양을 알아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귀엽다고 덜컥 데려와 어쩔 수 없다며 버리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그렇게 생명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