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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9

교양소설, 나를 찾는 여행

Editor. 김재희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는 가치를 찾아 과거로 떠나는 여행,
오래된 글귀를 찾아볼까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민음사

10월의 광화문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검찰개혁 건을 비롯해 공직자 자질에 관한 서로 다른 진영의 주장이 강렬하게 충돌하며, 일명 ‘조국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정치적 입장이 집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개인의 정치 성향이나 의견은 가급적 노출하지 않는 게 미덕이라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초상권을 개의치 않고 텔레비전 인터뷰를 자처했다. 조국 사태는 요새 정말 뜨거운 감자라 어디를 가도 대화 중에 꼭 한 번은 등장하는 소재다. 그리고 꼭 한 번씩 한껏 높아진 언성이 들리곤 하는 예민한 사안이기도 하다. 마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타이틀처럼, ‘나에게는 현재 맞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틀린’ 차이를 일상에서 쉽게 마주한다. 시간의 특성상 세상은 변하며 흘러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끊임없이 변화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 속엔 언제나 갈등이 자리한다.
과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생겨난 문학 장르가 있다.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을 뜻하는 ‘교양소설’ 혹은 ‘교육소설’이다. 이 장르는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보이며, 개인의 인격적인 완성에 초점을 두는 특징이 있다. 개인의 인간성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이유로는 시대적 배경이 작용하는데, 18세기와 19세기에는 계급에 따라 사회나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계급 차이로 인한 개인성의 상실과 무력함이 교양소설을 부추기는 자극제가 되어 나만의 개성과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교양소설이 발전하게 됐다. 교양소설의 표본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문학과 연극의 길을 선택한 주인공 빌헬름이 진정한 삶과 행복을 찾아 사회에 발을 내디디며 시작된다. 자칫 여성 편력 시대로 오인될 정도로 빌헬름의 다양한 연애사가 이어지는데, 마침내 나탈리에라는 여성을 만나 언약을 맺으며 그의 연애방랑기도 막을 내린다. 귀족 신분인 나탈리에와 평민인 빌헬름이 결혼하는 행위는 상속권을 박탈당하는 현실적 제약을 고려했을 때 급진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신분을 뛰어넘은 결혼’은 인간의 참된 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빌헬름이 찾은 새로운 인간상의 본보기는 자본주의적 시대상의 극복으로 드러난 셈이며, 스토리로 봤을 때는 아름다운 사랑의 완성으로 결말을 지었다.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등 근대화의 움직임이 교차하던 복합의 시대에 집필된 이 작품은 저자의 정치적 함의가 묵직하게 들어가 있는 교양소설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실 연애소설을 읽듯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한 국가의 문화행정을 처리하는 재상을 지낸 괴테가 시대공감과 교류의 통로로 ‘연애와 사랑’을 논한다는 것 또한 다분히 낭만적이고도 인간적으로 비친다. 빌헬름으로 하여금 변화를 통한 성장을 야기시킨 매력적인 갈등의 형상들로 등장하는 마리아네, 감정적인 변덕쟁이 필리네, 신비로운 미뇽, 아름다운 아마존 나탈리에는 각기 다른 서사를 갖고 있는데, 변화와 갈등에 관해 현대를 사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꿀같이 달콤한 주말, 걷기 좋은 날씨에 피해야 할 장소 1위인 광화문. 비단 광화문 광장뿐 아니라 반대를 향한 혐오와 소음이 진동하는 분위기는 사회와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시국이 복잡한 요즘, 팩트체크도 중하고 사회에 대한 의식을 게을리할 수 없는 시대지만 이러한 변화 속 ‘나’를 들여다보는 쉬어가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시대라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외부의 압력에 따라 자아가 만들어지는 필연은 과거에도 마찬가지. 200여 년 전 형태학, 광산학까지 더듬은 비상한 천재이자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당대의 시류 속에서 성장의 완성을 위해 보여주는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여정과 닮아 있다. 그도 사회와 국가라는 울타리 속에서 격동적인 변화와 끝없는 고민을 경험하며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교양소설’을 집필했으니 말이다. 커다란 이념과 이념이 부딪힐 때 자아는 숲속의 나무같이 희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회보다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그런 점에서 시대를 넘어 자아를 찾는 여정 가운데 있는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친밀감을 준다. 빌헬름의 유연하고도 예술적인 연애사 속에 담긴 성장을 향한 고민과 갈등, 그 성장의 완성본을 들여다보는 것은 반대와 반대가 급격히 부딪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쉼표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