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바르셀로나의 화사한 책더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도서관

에디터. 김경란 사진. ⓒ Jesús Granada ⓒ Marta Romero 자료제공. SUMA Arquitectura

스페인 최대 항구 도시 바르셀로나의 동쪽에 위치한 산 마르티 데 프로벤살스(Sant Martí de Provençals)는 지중해와 접해 있음에도 불과하고 노후한 건물들과 정적인 분위기 탓에 여느 고요한 유럽 마을과 같이 예스러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활동적인 공동체 생활을 북돋우기 위해 기획된 것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었다. 새로 건축될 4,000 제곱미터의 건물은 중앙 도서관으로 지정되어 향후 20년 동안 진행할 인프라 개발 계획의 첫단추를 끼우는 문화공간이 된다. 이에, 관계자들은 지역사회를 단합할 상징적인 테마와 명칭을 모색했다. 그리하여 2022년 개관한 도서관의 이름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도서관(Gabriel García Márquez Library)’이 되었다. 현재 남미 문학을 위주로 40,000여 개의 관련 문헌을 소장하며 개성이 뚜렷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이 도서관의 신비한 매력을 살펴보려 한다.
콜롬비아 출신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훗날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줄 『백년 동안의 고독』 발간 직후, 소설을 집필했던 멕시코시티를 떠나 1967년부터 1975년까지 바르셀로나에 거주했다. 그가 도시로 이주하도록 설득한 사람은 ‘라틴아메리카 붐(La generació́n del Boom latinoamericano)’ 작가들의 가치를 최초로 알아본 인물 중 한 명이자 바르셀로나 저작권 대리인, 카르멘 발셀스(Carmen Balcells) 였다. 오랜 시간 유럽 소설 양식을 모방해 오던 남미 문학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질적으로 향상했고, 출판사들의 번역 기술 발달과 국제적 관심에 힘입어 세계 소설계에 급부상했다. 당시 스페인은 마르케스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Jorge Mario Pedro Vargas Llosa)를 비롯한 수많은 남미 작가가 떠나온 나라들과 다를 것 없이 독재 정권 아래에 있었지만, 작가들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에 반대하는 독립 출판사들에 힘입어 바르셀로나 문학계를 보금자리 삼을 수 있었다. 마르케스는 추방을 우려해 이러한 반프랑코 투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쿠바의 정치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고 피델 카스트로와 친목을 쌓으며 자유로운 사유와 작품 활동을 펼쳤다. 또한 독재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검열을 당할 수도 있었던 그의 작품들은 현실적 존재와 사건들이 판타지적 존재에 가려지는 특유의 ‘마술적 사실주의’ 덕분에 제재를 피할 수 있었다. 마르케스가 바르셀로나를 “숨 쉴 수 있는 도시”로 묘사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 그의 이름은 도심에서 문학이 숨 쉬는 공간과 동일시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도서관은 일반적인 건물 모양과 자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산 마르티의 단조로운 건축물들과는 차별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다. 측면은 모두 평행사변형 같지만 건물 자재의 모양은 쉬이 알아보기 어렵고, 골 진 건물의 입체적인 표면과 하얀 골 사이사이에 설치된 창문이 호기심을 유발한다. 서재에 꽂혀있는 도서의 책배만 살짝씩 보여 책등과 표지가 궁금해지는 느낌과 흡사한데, 이는 흥미롭게도 쌓인 책더미를 형상화한 건물 디자인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나무와 유리를 적극 활용했으며, 2018년에 개관한 오오디 헬싱키 중앙 도서관(Oodi Helsinki Central Library) (Chaeg 82호 ‘세계의 도서관을 가다’ 특별기획 기사 참고)에서 영감을 받아 외형에만 치중하지 않고 지역 사회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철학을 준수하고자 했다.
건물을 둘러싼 바나나 나무 사이를 걸어 건물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건물 외관과 같이 화사한 분위기와 목재 인테리어가 더해 주는 따스함이 방문자를 반긴다. 신문과 잡지가 놓인 1층의 열람실과 안내데스크를 지나면, 총 5층인 도서관의 모든 층을 연결하는 중앙 계단이 위치한 커다란 삼각형 안뜰에 다다른다. 건물은 이곳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층이 마치 열린발코니처럼 이 안뜰을 향하고 있어 시선을 시원하게 틔워준다. 이런 건축 구조는 도서관 중심부에 자연광을 들여 조명 조건을 개선하고, 태양열 굴뚝 역할 또한 함께 한다. 태양 복사열을 흡수해 가열된 내부 공기가 상승하는 자연 환기 방법으로 공기 순환을 생성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건물 외관 나무 패널들의 조밀한 구조가 책을 형상화할 뿐만 아니라, 공간의 조명 조건과 활용에 영향을 미친다. 어린이와 청소년 서가와 열람실은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는 2층에서 3층까지 이어지고, 빛이 제일 잘 드는 4층에는 일번서가와 다양한 크기의 열람실, 자료실은 물론, 작은 교실과 정원이 위치하고 있다. 높은 층에서는 조명을 최대한 활용해 독서 혹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러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놓인 1인용 의자와 책상 근처에는 천장이나 스크린에 거즈 커튼으로 방문자만의 아늑한 공간을 구획한다. 또한, 층마다 넉넉히 배치된 안락의자와 해먹은 방문자들이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보내는 편안한 시간을 늘려준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 1층에는 다목적실, 소형 부엌과 라디오 스튜디오가 있다. 지역 라디오 방송국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의 이름은 ‘라디오 마콘도(Radio Macondo)’.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의 배경이 된 가상 도시의 이름이 붙여졌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도서관은 8월 말 국제 도서관 협회 및 기관 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Library Associations and Institutions)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진행한 ‘세계 도서관 및 정보 회의’에서 ‘2023년 최고의 공공 도서관상’을 수상했다. 건축양식을 비롯해 공간과 서비스의 유연성, 그리고 건물의 지속가능성 등 다방면에서 높은 평을 받았다. 도서관의 취지와 디자인, 그리고 이곳이 품고 있는 수많은 문학 작품들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라고 하기는 어렵다. 창밖의 바나나 이파리가 흔들리는 어느 따스한 오후, 해먹에 누워 남미 문학 소설 한 권을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라니. 다음에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거든 이 매력적인 책더미 속에서 잠시 쉼을 찾아보면 어떨까? 한장 한장 넘기며 호흡하고, 호흡하듯 독서하는 고독을 만끽하기에 적당히 밝고 포근한 아지트가 되어줄 것이다.
June23_SpecialReport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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