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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Going, Gone!

에디터. 전지윤 사진제공. 마로니에북스

“값을 매길 수 없는 진주, 이미 떠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추모하며 이 진주를 보냅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전쟁이 끝난 뒤 부상자 치료와 요양을 후원하는 긴급자금 마련 행사에 자신의 진주를 기부했다. 이 기부 행렬에는 왕족과 귀족은 물론 형편이 넉넉지 않은 대중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있었다. 이렇게 모인 약 3,597개의 진주를 가지고 보석 전문가들은 목걸이, 반지, 브로치 등의 주얼리를 만들어 런던 킹 스트리트 King Street에서 경매를 열었다. 이 경매의 스타 아이템은 ‘크기가 규칙적으로 커지는 63개의 진주와 장미 모양의 다이아몬드 걸쇠로 된 목걸이’였다.
『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 작품 250』에서 “값을 매길 수 없는 진주”라고 소개하는 이 목걸이는 1918년 당시 22,000파운드에 팔렸다. 이는 현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5억 5,700만 원에 이 른다. 진주 목걸이 하나 가격 치고는 상당한 셈이다. 누군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당시 한 관람객의 의견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다른 진주들은 바다에서 오지만 이 목걸이의 진주들은 인간의 마음에서 왔다면서, 인간의 애정과 고마움이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기에 구매자에게 목걸이의 가격은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흔히 소더비Sotheby’s와 크리스티Christie’s의 경매라고 하면 범접할 수 없는 고가의 물건들을 다룬다고만 생각한다. 경매에 관련한 뉴스 역시 거장의 작품이나 오래된 고미술품의 낙찰가 갱신 소식 등을 전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지난 250년간 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품들은 의외로 굉장히 다양하다. 미술품 외에도 난파선에 실려있던 화물, 테디 베어 인형, 오래된 지도나 필사본, 보석과 드레스, 영화 〈골든아이〉에서 제임스 본드가 탄애스턴 마틴 빈티지 자동차, 악기, 매머드 뼈대와 운석, 빈티지 와인, 편지 등…. 이 경매품들은 정치적, 사회문화적으로 의미있는 인물과 사건을 상징하는 이정표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경매에 올라 낙찰된 물건들은 위대한 컬렉션의 일부가 되거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위탁 또는 기증되어 대중에게 공개됨으로써 역사에 또 다른 족적을 남겼다. 경매를 그저 돈 많은 사람들의 비싼 취미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매에 나오는 작품들은 경매 직전까지 사전전시를 통해 실물로 선보여진다. 이 전시 기간 동안 수많은 관람객이 방문한다. 그러나 그 분위기와 자세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나 대영박물관 으로 줄지어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는 관광객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 중에는 작품의 진위를 판별하는 전문가나 연구자들도 있고, 그들 못지않은 지식과 혜안을 가진 컬렉터들과 애호가들도 많다. 이들은 매서운 눈빛과 차가운 머리로 출품작들을 살핀다. 그 날카로움에 베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꼼꼼히 살펴보는 까닭은 이 경매가 개인의 구매 이력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미술작품과 고미술품의 경우 전 세계 미술시장의 작품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젊은 현대 예술가가 단번에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따금 구호와 자선에 필요한 큰 자금을 마련하려는 인도적 목표를 지니기도 한다.
“한편에는 피카델리 왕립미술원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크리스티 경매회사의 최초 부지가 있는 펠멜과 매우 근접해 미술 시장의 대명사로 불리던 런던의 킹 스트리트에서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을 나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사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크리스티와 같은 메이저 옥션하우스Auction House에 짧은 실습을 간 적이 있다. 프리뷰 preview를 위한 준비가 한창인 경매소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람들은 조심스럽지만 바쁘게 작품을 옮기고, 양손에 서류를 든 채 카페트가 깔린 좁은 복도와 계단을 날아다니듯 빠르게 움직였다. 카탈로그에 실린 작품들을 연구한 전문가들과 감정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디스플레이가 한창인 전시실에는 경매될 작품들을 꼼꼼히 살피는 이들이 있었다. 소더비 올림피아Sotheby’s Olympia에서 세일즈가 이루어지던 때, 정문이 아니라 수장고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을 열면 심장이 터질 듯 흥분되곤 했다. 감정(鑑定)을 위해 선반에 놓인 의뢰품을 하루 종일 옮기고 다니는 사이 머리카락에 밴 냄새조차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경매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패기를 시험하는” 격렬한 스포츠와 같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한 판 승부이자 진귀한 앤티크antiques와 마스터피스masterpieces가 새로운 동반자를 찾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잊지 못할 경험이다. 커다란 스크린이 있는 방에 줄 맞춰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주변을 살피며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경매품이 들어오고 작품 설명이 끝나면 경매사가 예상 낙찰가를 시작하고, 응찰 패들 paddle을 가진 사람들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간다. 서면 응찰을 응대하는 직원들의 눈과 손이 바빠지고 전화 응찰 담당 직원들이 일제히 수화기를 들면 긴장감이 급격히 상승한다. 경매사가 종결부에 임박했음을 알리려고 망치를 들면 금세 닥칠 긴급한 리듬보다도 심장이 먼저 뛴다. 마지막 두 사람이 경쟁을 하고 경매사가 탕탕탕! 하고 망치를 두들겨 게임의 끝을 알리면 마침내 이 소모전은 잠시 숨을 고른다. 이때 참았던 탄성과 한숨, 혹은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게임을 시작하기 전의 워밍업일 뿐이다.
크리스티가 그 250년 역사를 보여주는 오브제 250가지를 선정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 작품 250』을 펴낸 것은 비단 중요한 작품들을 알려주거나 학술적인 수집의 역사를 보여주려는 목적은 아니다. 비록 “무작위로 뛰어드는 사치스러운 전시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단순히 유명하고 희귀하고 비싼 것의 거래를 기록한 카탈로그를 넘어선다. 미술평론가 허버트 퍼스트Herbert Furst가 “크리스티는 시대에 따라 남녀가 갈망해 온 것을 보여주는 척도이다. 말하자면, 음식, 술, 의복 같은 물질적인 생활필수품이 아니라, 실질적인 유용성은 없지만 이것 없이는 문명화된 동물이 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필수품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이 책은 크리스티 경매와 경매품들의 종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경매에서 낙찰되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경합이 있었는지와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는 크리스티의 편집팀이 독자에게 선물하는 보너스다.
25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크리스티와 같은 경매회사들은 거래품과 거래 방식 등에 있어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항상 인간의 창조력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의 선도적인 거래소이자 예술적 탁월함의 거래소”라는 그들의 대단한 자부심은 탈색되지 않을 것이다. 나날이 변모하는 시대에도 우리에게 어떤 형이상학적 작품들이 거래될지 기대를 걸어보는 바다.
April21_Inside-Chaeg_01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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