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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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7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그들이 사는 마을』 스콧 새비지 지음
느린걸음

프랑스 파리가 2024년 올림픽 개최까지 디젤 차량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해나가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를 시작으로 결국엔 도로에 전기 자동차만 주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최종 방침이다. 벨기에 헨트 역시 향후 5년 안에 도심에 자동차 진입을 전면적으로 막는다는 계획이다. 뉴스를 접하는 순간 무언가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기분이 들지만 동시에 걱정도 된다. 결국 이들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짊어져야 할 불편함이라는 책임을 맞닥뜨리기로 한 것일까? 자동차 없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만약 서울 같은 대도시도 그렇게 될 경우 우리의 주 이동 수단은 무엇이 될 것이며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또 어떤 대안이 마련될까? 하지만 차와 매연이 없는 거리로 변화할 동네 모습들을 자연스레 상상해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몇 권의 책과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리고 상상을 더해 내가 내놓은 이상향은 첨단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세상과 가내수공업이 부활하는 그 어디쯤엔가에서 터를 잡고 행복하게 존재하는 인류의 모습이었다. 물론 기술 문명에 무식쟁이인 나로서는 이 상상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소박한 시작으로 마을과 자신들만의 세상을 바꾸어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삶은 어느 한 가지만 충족한다고 만족되는 것은 아니기에, 앞선 문명에 감탄을 하다가도 지극히 소박하고 서툰, 사람냄새 나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극과 극의 삶은 과학의 맹목적인 발전을 가내수공업에서 우러나온 철학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필요하다.
당분간은 도시에서 일하며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나로서는 아미쉬 공동체의 삶이 낯설고 벅찰 듯하다. 아미쉬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개혁가들을 개혁하려 했다는 가장 급진적인 종파로,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 현재 약 25만 명이 미국의 동부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기계문명과 소비주의를 벗어나 스스로 활자를 조판하고 목판화를 새기며 태양열 수동인쇄기를 이용해 『플레인Plain』이라는 잡지를 발행해 온 그들의 삶은 만족의 삶이 무엇인지, 믿는 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어떤 것인지, 현대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해보게 해준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아미쉬 공동체의 『플레인Plain』에 수록되었던 글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고 배우고 느낀 것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단순 명료하다.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강해지며 현재를 만끽하자는 것이다. 현대 어린이들이 어릴 적부터 익히고 있는 컴퓨터 및 첨단 과학에 대한 지식은, 사실 그들이 자라 20년 후에 익히더라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들, 즉 색칠을 하고 종이를 오리며, 동요를 듣고, 더러워짐에 대한 걱정일랑 접어두고 진흙에서 뒹굴고, 개미와 벌과 메뚜기를 관찰하고 우스운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직접 만든 이야기로 꼭두각시 인형극을 하고 개와 고양이와 같은 동물들과 대화하는 일 등은 나중이 되면 너무 늦을 일들이다. 우리는 대도시에서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잃었나? 안락함 대신 내어준 것은 무엇인가?
“인간다운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에 따르는 무거운 대가를 감당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기계일 뿐이다. 시장조사 통계로 모든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기계.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이 얼마나 풍족하고 자유롭게 느껴지든 상관없다. 삶의 의미가 계절의 변화를 음미하거나 해변가를 따라 걷는 일에 있지 않고 학교 교육이나 정당, 병원, 기업, 중앙계획부처 같은 인공적 조직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박사학위를 가졌다 해도 바보가 되고, 아무리 좋은 약을 먹는다 해도 허약해지고, 아주 과학적으로 세워진 집을 가졌다 해도 포근한 가정이 없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본문 중
책은 꼭 아미쉬의 방식만이 맞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스스로 찾아야 하며 이에 관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면 삶은 망가질 것이라고까지 경고한다. 더욱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으며,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좋은 삶을 꾸려갈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자기 자신을 찾는 일, 수십 년에 걸쳐 켜켜이 쌓이고 덧칠된 외부 프로그래밍을 벗겨내고 그 밑에 드러난 자신의 희미한 윤곽을 발견하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어쩌면 참으로 간단한 것인데 왜 우리는 그 삶을 살아가지 못할까? 신해철이 만들었던 한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아미쉬 공동체의 이 기록들이 어쩌면 그 길을 찾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