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7

고양이 여행기 3

Editor. 박소정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살기 위한 걸음마를 배우는 중.
세상의 다양한 적에 맞서 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등을 섭취 중.
집사가 될 날을 고대하며 길고양이들과 교감 5년 차, 고양이만이 세상을 구하리라!

『고양이님, 저랑 살만 하신가요?』 이학범 글·영수 그림
팜파스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고양이가 불쑥불쑥 나타난다. 반가운 마음에 가던 길을 멈추고 인사를 하거나 시간이 될 때는 같이 놀자고 부른다. 대부분 고양이는 멍하니 쳐다보다가 하던 일에 다시 집중하거나 다른 길로 후다다닥 피해버린다. ‘아, 현실과 이상은 왜 이리도 먼 것인가….’ 고양이에게 다친 마음은 고양이로 풀 수밖에 없다고 했다. 씁쓸한 마음 달랠 곳 찾아 SNS에 접속한다. 피드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귀여운 고양이들을 한 마리씩 관찰한다. 낯선 외국 길냥이부터 잠을 자면서도 허공을 달리는 나비, 집사와 함께 식사와 디저트까지 즐기는 고양이까지 그 수를 다 헤아리기도 힘들다. 그중 팔로워가 수십 만 명에 달하는 스타 고양이도 있다. 슈퍼스타급 고양이의 일상은 하루에도 수차례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며칠만 피드를 지켜보면 마치 내 새끼(?) 같은 친근한 마음이 절로 든다. 이렇게 애정이 가다 보니 소식이 뜸해지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아무 예고 없이 짧게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감감무소식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나중에 집사의 속사정을 들어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는 공감이 든다. 그들에 의하면 관심이 넘쳐 고양이를 키우는 방식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이어진다고 한다. 이런 설전에 혼란스러운 한편 나는 과연 좋은 집사가 될 수 있을지 고민부터 앞선다.
현직 수의사이자 오랜 경력의 고양이 집사인 저자가 그간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팁을 담은 이 책을 읽다 보면 고양이와 삶을 공유하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저자가 반려묘 ‘루리’를 만나게 된 건 수의대 재학 시절 한 동물 병원에서 실습을 할 때였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새끼 고양이가 비를 맞으며 떨고 있는 것을 동네 주민이 구조해 병원에 데려왔다. 이미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던 터라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그였지만 그날따라 ‘이상야릇’한 감정에 홀려 덜컥 고양이를 맡게 됐다. 하지만 고양이와의 동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수의대생이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도통 무지했던 그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 내는 ‘골골송’을 분유가 기도로 잘못 들어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로 착각해 걱정하는가 하면 고양이를 키운 지 7년이 넘어서야 루리 또한 위협을 느끼면 ‘하악질’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그는 루리가 자라면 서 멀쩡한 캣타워를 놔두고 벽과 소파, 침대 등 온갖 가구에 스크래치를 하기 시작하자 내려서는 안 될 선택을 해버리고 만다. 직접 루리의 발톱 제거 수술을 감행한 것이다. 참고로 이는 발가락 첫째 마디뼈를 잘라내는 고통스러운 수술로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에 유럽과 미국 일부 주에서는 동물 학대로 여겨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나중에서야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게 된 그는 크게 후회하며 이를 계기로 좀 더 고양이에 대해 깊이 이해하겠노라 다짐한다.
현재 루리와 동거 10년째로 베테랑 집사이자 수의사로 거듭난 그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해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캣맘과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논란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면 개체 수가 늘어나고 전염병을 옮긴다는 낭설 때문에 생긴 것인데 사실 길고양이의 경우 밥을 챙겨주어도 질병과 교통사고 등으로 2~3년밖에 살지 못하기에 개체 수가 늘지 않는다. 또한 고양이는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체인 쥐를 잡기 때문에 오히려 전염병 전파를 막는 기특한 동물이다. 이 외에도 그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고 착각해 ‘조용한 학대’가 이루어진다고도 전한다. 길고양이가 하루 시간의 15%를 사냥을 하거나 노는 데 쓴다면 집고양이는 기껏해야 1% 정도 밖에 놀지 못하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은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거나 잠을 자는 데 쓰게 된다. 그는 고양이 또한 사회적 동물이기에 오랫동안 외로움을 방치하면 무기력, 분리불안과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고양이와 동거하는 이라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시간은 필수다.
이제까지 SNS에서 보아온 고양이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나 길에서 마주친 도도한 고양이의 모습이 연애 같다면 이 책은 묘와의 동거가 결혼, 아니 현실임을 말해준다. 아침에 눈 뜨면 머리맡에 고양이가 있는 꿈 같은 삶이지만 그런 행복한 순간만큼이나 동거인 겸 집사로서 의무가 막중하다. 계절에 상관없이 털털(毛毛)한 삶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며, 숨바꼭질에도 도가 터야 할 것이다. 아파도 아프다고 티 내지 않는 도도한 성격이기에 수시로 건강관리를 해줘야 한다. 가끔은 새벽에 우다다다 한참 달리기를 하다 자고 있는 내 몸 위로 점프하더라도 놀라지 않는 여유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집사를 위해 뭘 해줄까? 커다란 두 눈 껌벅이며 키스 한 번 날려주고 젤리 손바닥 보이며 그루밍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곧 세상의 평화가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