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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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7

불편해도, 마을

Editor. 이희조

아침마다 요가원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정치가 무엇인지 궁금해 녹색당원이 되었다.
매일 밤 내일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며 잠든다.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권단 외 6명 지음
삶창

주민들의 문화적 결속을 위해 만들어진 서대문구의 한 지역 카페 운영자에게 들은 얘기다. “카페 손님이 뜸해서 한동안 이 동네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전, 길가에 2층짜리 스타벅스가 들어섰는데, 2층까지 손님이 꽉꽉 차더라. 지역 주민을 만나려면 동네 카페가 아니라 대형 프렌차이즈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이웃’이란 개념을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아파트에 살아온, 동네 슈퍼보다 편의점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모인 세대. 이런 세대에게 과연 주민들끼리 살 부딪히며 살아가는 마을이란 게 필요할까? 무엇보다 개인주의로 똘똘 뭉친 나 같은 사람이 마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서울 시내 어디를 가도 붙어있는 마을 만들기 홍보물을 보다 보니, 마을과 나는 참 안 어울리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에게 미움받을 특징 한 가지 더. 나는 한 동네에 2년 이상 살아보지 못했다. 최근에도 집값 문제로 1년 만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다. 동네를 알고 동네 사람들과 정을 나누려면 적어도 5년은 넘게 살아야 할 텐데, 나는 어느 곳이든 잠시 머물렀다 떠나버리는 도시 유목민이다. 학교 다닐 때 살았던 동네는 사회인이 되기 전 잠시 거쳐 가는 환승역 같은 곳이었고, 지금 사는 곳은 출퇴근하기 가장 좋다는 이유로 사는 것뿐 다른 연결고리는 없다. 이런 ‘어차피 떠날 동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내게 마을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그러다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라는 책을 우연히 접했다. 마을 만들기에 딴지를 거는 책은 드물어 내용이 궁금했다.
“마을이 소위 ‘살기 좋은 곳’이 되면 집값이 오르죠. 집값이 오르면 가장 가난한 사람들부터 쫓겨나기 시작합니다. 마을이 누구를 품고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있을까요?”
“도시는 정말 옮겨 다니며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도시를 하나의 마을이라 볼 때 마을의 구성원이 계속 바뀐다는 거죠. 언제 어떻게 다른 특징을 가진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올지 알 수도 없고 그것을 제어할 수도 없기 때문에 마을은 절대로 하나의 형태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본문 중
마을 만들기 사업에 가졌던 나의 의문들이 시민사회 각지에서 활동하는 7인의 대담 속에 녹아있었다. 마을이 꼭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목적으로 머무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 마을이 갈등을 회피하기보다는 생산적인 갈등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마을 만들기가 지금처럼 관광상품 만들기 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의견 등이 아주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결국엔 마을 만들기를 낭만화하지 말고, 우리가 왜 마을을 꿈꾸게 되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방점이었다. 본래 마을이란, 안전한 먹거리, 위생, 치안 등을 모두 정부와 대기업에 위임해버린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솔루션 중 하나였다. 일전에 살충제 달걀 파동이 있었을 때, 귀농한 친구 부모님의 소규모 친환경 양계장에서 달걀을 주문해 먹은 적이 있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이런 제품을 가까운 동네에서도 팔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집 앞 체인형 슈퍼마켓에서 그런 것을 취급할 리 없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한다면, 2년마다 동네를 옮기는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폐지를 줍는 노인도 함께할 명분이 있다. 우리는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믿을 수 있는 식료품점, 반찬가게, 문방구, 신호등, 골목길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경험한 적 없다고 마을을 섣불리 경계했던 나는 이제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마을을 가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