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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7

제주를 가야하는 핑계

Editor. 김지영

정도를 막론하면 일주일 중 나흘은 술과 함께한다.
술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행복해진다.
가끔 내 주업이 에디터인지 프로알코올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 정우열 지음
어떤책

육지 사람인 내게 제주는 꿈의 섬이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지만 적어도 내게 제주만큼은 다르다. 어떤 이는 미국에 괌이 있다면 한국에는 제주가 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비록 괌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그 감성이 어떤 것인지 만큼은 어렴풋이 알겠다. 지난 여름 휴가에 제주도를 방문했다. 처음에는 남자친구에게 일본을 가자며 졸라댔지만, 서로의 금전적 이유로 다음 겨울 휴가로 미뤘다. 합의는 아니었고, “일본은 겨울에 가는 게 어때? 온천도 좀 하고”라는 그의 말에 “기왕이면 원숭이가 온천하는 곳을 찾아서 가자!”라고 내가 받아치면서 그렇게 굳어졌다. ‘일본에서 원숭이와 함께 온천 즐기기’는 지금도 내 큰 꿈이다.
첫 제주 방문 때는 제주 여행책 여러 권을 읽어보고 몇몇 여행지를 정했다. 실패할 상황을 대비해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올린 블로그 글까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꼭 가봐야 할 곳, 꼭 먹어야 할 음식, 꼭 사야 할 것 등 ‘꼭’ 해야 할 목록을 만들어 실천하고 왔지만, 결국 관광지만 다녀온 느낌이랄까?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여행 가이드북은 참고만 해야지 온전히 그것으로만 계획을 세우는 건 여행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특히 음식에 대해선 더욱더.
몇 번 후회했던 경험을 밑거름 삼아 이번 여행만큼은 가이드북에 얽매이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계획을 세웠다. 대부분 레저스포츠 위주였는데, 짚라인이나 해수욕 같은 자연과 함께하는 놀이랄까. 한참 놀고 나서 먹는 제주 음식과 한라산 한잔이면 그게 전부지 싶었다. 여행 막바지에 남자친구가 자연을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털어놨을 때에야 동반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안해졌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제외하면 처음 온 제주도였는데, 제주에서 손꼽는 자연경관을 못 보고 돌아가야 하는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제주가 아른거렸다. 아쉬움에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가 한몫 거들었다. 제주도 관련 책을 잘 안 읽는 편이지만 완결 웹툰이 책으로 나왔고, ‘올드독’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고등어회를 김과 밥에 싸 먹는다거나 자리회는 뼈째로 씹어먹어야 한다는 것, 시장에서 사 먹은 오메기떡은 진정한 오메기떡이 아니라는 것 등 내가 가서 즐기고 온 것이 모두 온전한 제주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소비한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아주 잠깐 했다. 다행인 건 아직 오름은 다녀오지 않았다.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오름에는 진드기가 많다. 그래서 꼭 오름을 올라 갔다 와서는 신발이나 옷가지를 잘 털어줘야 한다. 이 책이 꼭 시리즈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육지 사람에게 제주는 아주 낯선 곳이다. 그렇다고 주변 제주 출신을 붙잡고 이러쿵저러쿵 물어보기에는 상대방이 꽤 귀찮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제주를 다시 다녀와야겠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들을 몸소 체험하고 싶다. 아직 모르는 점이 더 많겠지만, 방문할 때마다 제주는 무척 즐거웠던 곳이라 정착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만약 제주 여행을 계획했거나 제주를 다녀왔지만 만족할 만큼 즐기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나와 함께 제주에 가야 하는 핑곗거리로 이 책을 들이밀자, 동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