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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7

오해 마세요, 사랑해서 이러는 겁니다

Editor. 김지영

정도를 막론하면 일주일 중 나흘은 술과 함께한다.
술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행복해진다.
가끔 내 주업이 에디터인지 프로알코올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잠』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열린책들

최근 주변에서 수면유도제나 수면제를 먹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약이라면 질색하는 나부터도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 숙면에 도움을 준다는 비타민을 챙겨 먹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현대인의 고질병 중 대표 격인 불면증은 단순히 잠을 자지 못하는 증상 외에도, 수면 시간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자고 일어나서도 쉽게 원기 회복이 되지 않는 상태도 포함한다. 한국 국민 중 54만 명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니 잠든다는 건 복이고, ‘잘’ 잔다는 건 축복이다.
잠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얻었다. 요즘은 ‘낮잠카페’라고, 주로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쪼개 15분이라도 낮잠 잘 수 있는 카페가 생겼다고 한다. 사무실 근처에 생기면 한번 가볼까 싶은데, 과연 망원동에도 생길는지.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잠과 관련된 사업도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ASMR, 슬로우카우 등 다양한 콘텐츠와 상품이 나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에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잠』 역시 최근 트렌드와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집필된 꿈속 모험 소설이다. 유명한 신경 생리학자 카롤린 교수가 잠의 6단계를 발견하고 연구를 진행하던 중 피실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병원에서 해고당한다. 실제로 현재 구분하고 있는 사람의 수면 단계는 5단계까지다. 1단계는 잠자리에 누워 잠이 들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호흡과 맥박이 느려진다. 2단계는 깊은 잠 세계의 문이다. 이때는 근육 신경과 감각 기관이 무뎌지면서 몸이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로 변한다. 3단계는 취침 30분경으로 깊은 잠에 빠져든 상태다. 4단계는 가장 깊은 잠을 자게 되는 상태로, 이 단계에 도달해야만 꿈을 꾸게 된다. 4단계보다 더 깊은 잠의 단계가 5단계다. 렘수면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단계에서는 몸 전체가 이완된다. 몸의 모든 근육의 스위치가 꺼지는 대신 뇌 활성화 스위치가 켜진다. 소설에서는 자크가 수면 5단계에서 ‘분홍 섬’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미래의 자신과 만난다. 자크는 꿈과 현실을 오가며 자신에게 닥치는 사고와 사건을 해결하는데, 이 과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잠과 꿈을 따라 이야기가 흘러간다. 자크는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잠에 빠지는 기면증 환자, 악몽을 꾸는 여자친구, 불면증 환자, 꿈을 중요시 여기는 세노이족 등 대개 잠과 접점이 있는 인물을 만난다. 그들은 모두 자크를 중심으로 자신의 병을 고치거나 혹은 신체적 교감을 통해 자크를 혼란과 황홀에 빠지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불면증 환자 모임에서 만난 쥐스틴이다. 아주 짧게 등장하지만 그녀는 소설 속 인물 중 가장 매혹적인 여성이다. 그녀의 혀는 뱀처럼 양쪽 끝이 갈라져 있는데, 양쪽 혀 끝을 이용해 집게처럼 물건을 집는 재주도 부린다. 쥐스틴과 자크는 빠른 시간 안에 굉장히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고, 자크는 쥐스틴을 통해 마약을 접한다. 마약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자크가 꿈의 5단계에서 분홍 섬에 도착하게 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쥐스틴의 영향이다. 소설 속 쥐스틴은 성경에 나오는 뱀과 비슷하다. 성경 속 ‘달콤한 사과’ 같은 마약을 자크에게 건넸고, 그 ‘사과’를 먹은 자크는 신의 분노를 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꼴이니 말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만 그래도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발돋움이 됐으니 자크가 그녀를 만난 건 운명이라 말해야 하나?
어쨌든, 『잠』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느 소설과 다른 색을 띠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그의 색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기에 작가를 좋아하는 팬덤에게는 참 좋은 작품이다. 그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동일 저자의 다른 장편 소설보단 쉽게 읽을 수 있으니, 관심 있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1권을 읽는 속도보다 2권을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결론에 다다르면 다시 속도가 붙으니 인내심을 가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