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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7

게을러지는 습관 들이기

Editor. 박소정

잔병치레가 잦아 각종 건강 정보를 두루 섭렵 중.
집사가 될 날을 고대하며 동네 길고양이들과 교감 4년 차.
삶의 균형을 위해 생각은 적게, 몸은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 게으름뱅이는 무엇이든 잘한다』
로런스 쇼터 글 마갈리 샤리에 그림
예담

올해 여름 휴가 계획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었다. 평일은 물론이고 쉬는 날도 계획을 세우며 살아왔던 터라 휴가 며칠 전부터 괜히 초조했다. 누군가 지나가다 “휴가 때 뭐해?”라고 물으면 “별 계획 없는데”라고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뭐라도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다. 결국 귀가, 아니 마음이 팔랑거린 나는 휴가를 단 며칠 앞두고서야 남해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집에서보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비로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휴가 첫날 서울에서 남해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데에만 약 다섯 시간이 걸렸다. 도착하자 멀미로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을 발견하고는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마음먹은 휴가 목표에 맞게 첫날 대부분의 시간을 게스트하우스 내 카페나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거나 밖을 바라보길 반복하며 무사히 보냈다. 그런데 생각보다 위기는 일찍 찾아왔다. 이튿날 오후가 되자 이 먼 곳까지 와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운이 몰려온 것이다. 하루 종일 책이나 읽을까 싶었지만 어제 내내 책을 읽었던 터라 썩 내키지 않았다. 카페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자니 좋은 것도 잠깐, 갑자기 회사에서 하다가 멈춰 두고 온 일이 눈에 아른거렸다. 생각은 쓸데없이 깊어져 ‘어차피 가면 바쁘게 해야 할 일인데 여유롭게 미리 해 놓을까?’에 이르렀다. 다행히도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공용 컴퓨터를 들여놓지 않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덕분에 그 생각은 일찌감치 접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다이어리를 펴고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본래 목표를 가능한 지키는 선에서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자 가장 지적인 일이다.
—오스카 와일드

휴가를 떠나기 전에, 아니 이번 휴가 목표를 잡기 전에 ‘구루’를 만났다면 이번 휴가는 좀 달라졌을 수도 있을까? 구루는 게으름뱅이라 불리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게으름의 겉모습과 다르다. 영혼 깊은 곳에 사는 평온한 존재로 덜 일하고도 더 얻는 법과 스트레스와 고민에서 벗어나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우리가 게으름이라 부르기도 하는 ‘무위’는 수천 년 전 동양의 종교와 철학에서 시작된 것으로 쉽게 말해 자연의 흐름대로 놔두는 것을 말한다. 강과 산, 그 속에 사는 작은 생물까지 모두 거대한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데 반해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 흐름에 역행하며 살아간다. 구루는 이를 강줄기에 비유한다. 강줄기가 오르고 내려가며 물의 흐름이 강해질 때도 약해질 때도 있다. 사람의 감정 또한 기쁘거나 슬프거나, 무기력하거나 힘이 넘치며 강의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 감정을 감추거나 무시하려 노력하게 된다. 처음에는 부모님이나 타인의 강요 때문에 시작되지만 그게 학습되면 스스로 감정을 숨기게 된다. 그래야만 ‘착한 소년, 착한 소녀’ 로 주위의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거센 강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시켜 무감각의 상태로 만들거나 자극적인 것만 찾으려는 중독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19세기 프랑스의 사회학자 폴 라파르그는 “게으름은 길들임에 대한 반발이다”라고 전하며 ‘게으를 권리’를 주장했다. 이는 인간의 본성대로, 자연의 흐름대로 살아갈 권리를 말한다. 여행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의 어려움을 전했듯 마음처럼 쉽지 않다. 구루는 이런 이를 위해 느긋해지는 습관을 알려준다. 일단 스트레스를 받거나 삶의 흐름을 잃은 느낌을 받으면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멈춘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감각에만 집중해 본다. 이때 느끼는 감각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좋은데, 참고로 어떤 감정이든 나쁜 것은 없다는 생각이 우선되야 한다. 질투나 분노, 짜증 모두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뭐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일, 행동, 감정을 살피며 이것 때문에 잃는 더 큰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면 훨씬 쉬울 것이다. 멈추고, 느끼고, 놓아버리는 이 세 단계는 자신에게 공간을 주는 활동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명상처럼 처음에는 낯설어 잘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 세 가지를 떠올려 행동에 옮겨보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감정이란 배가 방향을 틀어 자연스러운 강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