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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7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에게

Editor. 박소정

잔병치레 때문에 각종 건강 정보를 두루 섭렵 중.
집사가 될 날을 고대하며 동네 길고양이들과 교감 4년 차.
삶의 균형을 위해 생각은 적게, 몸은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센서티브』 일자 샌드 지음
다산3.0

밀린 일을 하기 위해 주말 아침부터 서둘러 조용한 카페를 찾아 나섰다. 카페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카페에서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모처럼 기분 좋게 노트북을 켜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작업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점심시간을 넘어섰다. 카페의 데시벨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부터였다. 커플이 속닥이는 소리는 애교 수준이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아이를 자유롭게 방목한 채(?) 수다에 빠지신 어머니들에게 눈길이 갔다.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일하려던 찰나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어르고 달래자 더 서럽다는 듯이 ‘엉엉’ 울었다. 아이가 원망스러웠지만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던 나의 꼬맹이 시절을 떠올리며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울보’라는 별명을 위해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울어 엄마의 속을 자주 태웠던 것만 기억이 난다.
떡잎부터 예민한 기질을 보였던 그 꼬맹이는 오늘날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모태 감각을 유지하며 다사다난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일상엔 도시의 소음이나 북적이는 사람부터 안하무인의 사람까지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이 존재한다. 그중 큰 스트레스 중 하나는 “넌 왜 이렇게 약해, 강해져야 해”식의 조언이다. 갈등에 시달릴 때면 언제나 나는 출혈이 크고 회복은 더딘 편이었다.
때문에 주위에서는 그렇게 살면 손해라며 강해지는 비법 같은 걸 전수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데 지친 나는 언젠가부터 ‘나는 왜 예술가가 되지 못했는가’ 속으로 한탄하게 됐다. 예술가라면 민감한 기질을 까다롭다기보다는 섬세한 감수성으로 인정받고, 강해지라는 주변의 압박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극도의 민감성은 인격을 풍요롭게 만든다. 단지 비정상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만 이러한 장점이 매우 심각한 단점으로 바뀐다. (중략) 극도의 민감성을 본질적으로 병적인 성격의 구성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그렇다면 인류의 4분의 1을 병적인 사람으로 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카를 구스타프 융

“민감함은 신이 주신 최고의 감각”이라고 말하며 남들보다 민감한 이들을 위한 심리학책을 펴낸 일자 샌드의 이야기는 예술가가 되지 못해 서러운, 아니 민감한 기질이 고민이었던 나에게 민감함을 새롭게 볼 기회를 주었다. 덴마크에서 오랜 시간 심리치료사로 활동하며 많은 이들과 대화해온 그녀는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이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연구에 의하면 보통 다섯 사람 중 한 사람, 즉 20% 정도가 타인보다 특별히 민감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는 사람뿐 아니라 고등 동물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이들은 크게 회복력이 강한 유형과 매우 민감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특별히 민감한 이들은 평소 타인에게 신세 지는 걸 꺼리는 편이고 누군가의 불행에 쉽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별것 아닌 소리에 크게 신경을 쓰기도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향으로 내향성인 이들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민감한 이들 중에서도 30% 정도는 외향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밝혀져 민감성이 곧 내향성과 동일하다는 공식을 깼다.
민감한 이들은 예민한 신경 체계 덕분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더 많이 인식하고 인풋input을 더 깊이 입력한다. 이는 상상력에 도움을 주어 창의적인 일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을 견디는 임계점이 낮고 타인의 감정으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아 하루의 일과가 끝날 때 즈음이면 에너지가 다 소진되거나 안 좋은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다. 특히 사람들이 북적이는 파티와 같은 곳은 인풋이 넘쳐나는 장소로 이들에겐 과한 자극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잠시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나 휴식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쿨Cool을 넘어 힙Hip한 것이 주목받는 시대에 어쩌면 민감한 이들은 넘쳐나는 자극에도 ‘괜찮아’를 외치며 시류를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왜 이렇게 예민해?” 라는 상대방의 질문에 치부를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이에게 이 책은 큰 공감을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약간의 신경증을 갖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만 있다는 걸 고려한다면, 이 책은 특별히 민감한 20%을 넘어 때론 쿨하고 힙하지 못 할 수 있는 만인을 위한 책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