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7

나는 조카에게 과학자를 선물하기로 했다

Editor. 한진우(메디치미디어 편집자)

새해 들어 금연을 결심했지만 16시간 만에 “마약 중독자를 얕보지 마!”라고 외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금연의 대가로 구입했던 플스VR을 아내가 팔아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원소 118』
시어도어 그레이 지음·닉 만 그림
영림카디널

얼마 전 누나로부터 매우 곤란한 부탁을 하나 받고 말았다. 이제 겨우 열 살에 불과한 조카에게 생일선물로 책을 선물하라는 것이다. 사실 작년에 건담 프라모델을 선물했는데 영혼이라고는 단 1mg도 안 담긴 목소리로 “우와… 기쁘다…”라는 반응을 보여 올해는 건너뛰려 했다. 하지만 얼마 전 결혼을 하면서 누나로부터 물질적인 지원을 적잖이 받아 당분간 충성을 맹세한 터라, “맡겨만 주십시오”하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선물용 책이란 참으로 덧없지 않은가. 책 선물이란 저자를 선물하는 일이기도 한데, 받는 이의 관심사나 욕구를 모르면 세련된 종이 뭉텅이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책 선물의 팁은 있다. 무조건 두꺼운 양장본을 고르는 것이다. 이공계라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종교 쪽이라면 김영사의 『예수평전』 IT 종사자라면 『게임사전』이 무난하다. 다소 고가여서 돈 좀 들였다는 티를 낼 수도 있다. 아마도 받는 이가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자기 책장의 교양 수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 좋다.
서점에서 한참을 고민한 후 『디트로이트 메탈시티』를 꺼내 들었다가 아내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마음을 다잡고 구입한 책이 있으니 바로 『세상의 모든 원소 118』다. 불과 240쪽밖에 안 되는 책이다. 처음에는 책장의 교양 업그레이드용으로 골랐지만 몇 장을 읽어본 것만으로 과학책에서 시도할 수 있는 최고의 스토리텔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주에서 인간이 지금까지 발견한 모든 원소의 특징, 발견한 일화, 현대 과학에서의 쓰임새 등이 원소의 실제 사진,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응용 제품과 함께 풀컬러로 들어가 있다. 압권은 생명의 근원인 물을 이루는 수소와 산소였다.
이 둘은 기체이기 때문에 실제 사진이 없으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이며 별빛을 흡수하여 장관을 연출한다”는 설명과 함께 독수리성운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우주에서 가장 먼저 태어났고 가장 흔해빠진 원소가 15광년에 걸쳐 거대한 장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편 산소는 영하 183℃에서만 볼 수 있는 새파란 액체 사진으로 표현되었다.
원소 정보를 기똥차게 재미있게 다뤘지만 원소번호 93번부터 시작되는 악티늄족에 다다르면 작가도 자기 능력을 뽐내는 일을 그만둬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93번 원소부터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원소이며 딱히 쓰임새도 없고 반감기가 무척 짧아, 소위 말하는 ‘발견을 위한 발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아인슈타늄 항목에서 아인슈타인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핵 개발 촉구’ 편지를 보낸 일화를 들려주며 자연스럽게 핵분열의 원리를 설명한다. 사실 핵분열은 원소가 다른 원소로 뒤바뀌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구와 같은 암석형 행성은 철, 금, 구리 같은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내지만 목성 같은 가스형 행성은 무거운 원소를 만들지 못한다. 118가지에 달하는 원소를 소개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지구가 암석형 행성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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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조카 녀석이 책을 받아들고 곧바로 펼쳐본 후 흥미를 보였다. 열 살은 이제 더 넓은 세계를 알아가는 나이다. 이 책은 세상의 기본이 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당신도 받는 이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