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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7

물마음결을 촘촘히 따라 그린 세밀화 한 권

Editor. 이수진

근사한 문장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주섬주섬 적기 시작한다. 가장 오래도록 좋아하고 있는 문장은 몽테뉴의 말.
그것은 바로 “나의 일과, 기술 그것은 살아가는 일이다.” 라는 말.

『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사전의 문체를 좋아한다. 그 또렷한 시선과 확신 있는 자세라니!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을 가장 좋아한다. 세상에 순도 100%의 정확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게 사전의 간단명료한 문체는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전은 의심 많은 사람들의 눈초리로부터 꽤 자유롭기까지 하다. 사전만큼 온 국민의 신뢰를 받는 편집물이 또 있을까.
그런데 제아무리 예리한 시선으로 뜻을 풀이해놓은 사전이라 할지라도 종종 그 쓰임이 헷갈리는 단어들이 있다. 이를테면 ‘솔직’과 ‘정직’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사전에 솔직과 정직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솔직: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의 어원
정직: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

솔직과 정직 두 단어 모두 바르고 곧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조금 아쉽다. 명확하게 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솔직한 사람보다는 정직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솔직함이 집중 조명을 받는 주인공 느낌이라면 정직함은 오래도록 정성스럽게 닦아서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마룻바닥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다. 이 직감을 좀 더 촘촘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무렵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을 만났다. 시인은 솔직함과 정직함에 대해 아래와 같이 풀이한다.
솔직함과 정직함
솔직함은 자기 감정에 충실한 것이고 정직함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은 말로 쓱 적어놓은 시인의 뜻풀이를 읽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개운함이 올라왔다. 시인의 뜻풀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앉은 자리에서 책을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다른 말들은 어떻게 풀이되어 있을까?’ 읽을수록 다음 단어가 궁금했다.
시인이 풀이해놓은 말들을 따라 읽는데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이토록 다양하고 자유로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꼭 한 번쯤 발생하는 사건이 있다. 바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다. 마음을 들여다봐도 이게 어떤 감정인지, 느낌인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면 시인이 정성스럽게 갈고 닦은 말을 풀이해놓은 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우리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명확하게 인식하려고 조금만 노력해도 세상의 불필요한 싸움이 반쯤 줄어들지 않을까, 반나절 정도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시인의 뜻풀이를 알게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정직한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