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나의 작은 나무 인형

글. 김보나
자료제공. 우리아이들(북뱅크)

요즘 우리집은 아침부터 거실 스피커에서 정국의 ‘Dreamers’가 흘러나온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의 흥이 가시지 않은 나머지 우리 가족 기상곡이 되어버렸다. 월드컵 기간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흥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4년마다 뜨겁게 달아오른 이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니까 말이다. 그러나 월드컵은 나에게 흥분과 함께 묘한 기분이 찾아들게 만들기도 한다. 기억에 남아있는 거의 첫 월드컵인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엄청난 열기 속에서 생애 첫 죽음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감정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정신없이 열띤 분위기 속에서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막연하게 슬프고 무서워서 얼떨떨한 채로 집에 도착했는데, 예상과 달리 집 안 풍경은 어수선했고, 슬프지만 왁자지껄했다. 아빠와 고모들, 할머니는 울기도 하셨지만, 찾아와 준 손님들을 맞으며 음식을 대접하고 준비하느라 슬플 겨를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문상객들이 술과 부침개를 먹으며 한쪽 구석의 TV 앞에 모여있던 그날 밤, 도하의 기적이 일어났다. 지역 예선전 마지막 순간에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초상집은 순간 잔칫집으로 뒤바뀌었다. 그때의 나는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왁자지껄하던 손님들이 돌아가고 늦은 밤이 되자, 아빠는 죽음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은 마음 아프지만, 열심히 자신의 몫을 다하고 가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기쁘게 보내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남아 있는 우리가 너무 슬퍼하기만 한다면, 할아버지도 마음이 아파서 빨리 천국으로 가지 못하실거라면서. 알 것도 같았고, 모를 것도 같았다. 하지만 어른이된 지금, 할아버지 죽음을 아주 슬프게만 기억하지 않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위로하는 존재 ‘꼭두’
‘꼭두’ 하면 ‘꼭두새벽’과 ‘꼭두각시’밖에 떠오르지 않던 내가 꼭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18년 평창 올림픽 폐막식에서다. 우리를 또 한 번 흥의 민족으로 달구어 놓은 평창 올림픽, 그 폐막식에서는 기억의 여정을 떠나는 거북과 함께 꼭두가 등장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부터 IOC는 올림픽을 위해 애쓰다 희생하신 분들을 위해 추모하는 시간을 마련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슬픔과 위로의 도구로 꼭두를 세운 것이다.
꼭두는 우리나라 전통 장례문화인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인형으로, 사람은 물론 동물과 식물의 형상까지 종류가 다양한데 그 역할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는 노래와 춤으로 위로를 건네고, 누군가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여행자를 보호하며, 세상을 떠나는 영혼 곁에서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모든 꼭두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저세상’이라고 표현하는 초월적 세상을 연결한다는 커다란 공통점을 갖는다.
구성진 가락의 피리 독주와 함께 폐막식에 나타난 꼭두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누비며 죽음을 위로하고 행복을 기원했다. 이승에서 저승의 경계로 넘어갈 때 이처럼 함께할 길동무가 있다고 생각하니 죽음이 꼭 슬프고 어두운 것만이 아니라, 삶을 마감하고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통과의례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위로와 격려의 길동무
“너는 꼭두라고 한단다. 사람들이 하늘나라 갈 때 길을 열어 주고 같이 가는 길동무지. 하늘나라는 아주아주 멀어서 여럿이 시끌벅적 놀면서 재미나게 가야 해. 그래야 가는 사람도 너희들도 지루하지 않거든.”
지와 현실을 넘나들며 전통문화 속 꼭두의 의미를 풀어낸 그림책 『길동무 꼭두』는 한 조각가가 꼭두 인형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꼭두가 자신이 지킬 여자아이를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꼭두 인형을 만드는 아저씨는 어느 날, 자신을 보며 빙긋 웃는 듯한 나무 인형을 만들고서 ‘꼭지’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수줍음 많은 ‘숨이’가 인형 만드는 모습을 창밖에서 지켜보자, 아저씨는 평생 좋은 길동무가 될 것이라며 꼭지를 숨이에게 선물하기로 한다. 드디어 꼭지가 완성된 날, 모든 꼭두들이 나와 악기로 흥을 돋우고, 재주를 부리고, 춤과 노래를 하며 꼭지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꼭지와 숨이는 단짝 친구가 된다.
전통 소재인 꼭두를 다정하게 소개하는 이 책은, 김하루 작가가 우연히 꼭두조각가 김성수 작가의 전시회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스토리에 김동성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김하루 작가는 잊혀가는 우리 전통문화 속 위로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따스하게 풀어 놓았고, 김동성 작가의 그림은 마치 꼭지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을 불어넣었으며, 상여를 따라가려는 꼭지를 업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따스하게 담아냈다. 특히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흥이 넘치는 꽃상여가 등장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주위의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저승이라는 낯선 길을 떠나는 영혼의 두려운 마음을 달래주고, 즐겁게 안내하는 꼭두들은 저마다 특별한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다. 그 각각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꼭두의 따듯한 마음이 가득 전해져 온다. 이러한 꼭두를 이 세상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로 표현한 『길동무 꼭두』는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죽음과 이별이 막연하게 두렵고, 낯선 모든 이들에게 담담한 위로를 전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두 하나쯤 있다면 어떨까?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일상이 멈춘 것 같은 순간에도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존재. 나를, 혹은 연약한 누군가를 지켜보고 마지막 순간까지 손잡아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사는 일도, 언제일지 모르는 그 마지막 순간도 조금은 덜 외로울 테니 말이다.
꼭지는 몇 밤 지나 숨이를 따라 도시로 갑니다. 나는 꼭지야, 나는 꼭지, 몇 번이고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조그맣게 읊조렸습니다.
January23_TailofTales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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