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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8

철학 적정 거리를 유지하세요!

Editor. 박중현

불친절하고 사적인 철학책 감별법
“모르긴 몰라도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으면 그 책은 아닙니다.”

『뉴필로소퍼』 편집부 지음,
바다출판사

철학책은 언제 어떻게 읽는 게 좋을까? 생각해보면 이 물음은 ‘일상 속에서 철학은 언제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까?’와 닮았다. 내가 생각하는 철학책의 이상적인 자리는 손 닿는 곳에 항상 있되 결혼반지나 커플링 혹은 좌우명처럼 찰싹 붙어있다기보다 생각나면 (혹은 생각 없다가도 눈에 띄면) 한 번씩 집어들 수 있는 곳이다. 답답하게 항상 곁에 있을 필요까지는 없고, 팍팍한 일상에 이따금 당을 보충해주는 주전부리 포지션이면 좋을 것 같다. 자연스레 ‘철학책 독서법’까지 가 닿는 듯한데, ‘이건 철학책이야! 나는 지금 무려 철학책을 읽고 있다고!’라는 필요 이상의 뜨거움보다는 ‘이런 게 있었지’ 하는 명백히 조금은 여유 있는 상태 혹은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오늘 좀 시니컬한’ 상태로 읽을 때 오히려 실용적으로 감명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찌 보면 독서 자체에 집중하게 되기보다 읽다가 (평소에 하지 못한) 딴생각에 잠기게 되는 루트(?)가 베스트지 않을까 싶다.
자기가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행위는 ‘자기기만mauvaise foi’의 심오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삶의 전체성이나 서사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을 상품화하는 그릇된 탐미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성찰하는 삶’으로 이끌기 위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했을 때, 그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인간적 삶이 무엇인가 혹은 제대로 행동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가를 이해하라는 의미이다.
(…)‘과도하게’ 성찰하는 삶은 아예 성찰하지 않을 때보다 훨씬 해로울 수 있다.
—『뉴필로소퍼』 3, 「과도한 자기성찰 금지」

『뉴필로소퍼』는 딱 이 조건에 부합하는 멋진 철학책이다. 올해 1월 국내판을 창간했으며, 계간지 형태로 각각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피처Feature, 오피니언Opinion, 크리틱Critic, 인터뷰Interview, 칼럼Column, 에세이Essay 등을 선보이는 철학잡지다. 책 정보와 시각을 소개하는 Our Library와 고전 읽기, 철학적 단면을 만화로 재미나게 보여주는 코믹Comic, 철학에 대한 다양하고도 생생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릴레이 코멘트와 나만의 인생철학 13문 13답 등도 흥미롭다. 너무 밭지도 너르지도 않은 시기마다 시의성 있는 화제를 다양한 글과 생각, 시각적 요소로 자극하는(폐간되지 않고 내가 보는 한 평생!) 철학잡지는 그야말로 일상에서 철학하기 가장 이상적인 책이 아닐까 싶다. 또한 앞선 「토픽」 기사에서 언급하지 못했지만,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은 나의 철학에도 선지자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귀중하다. 그들이 위대한 이유는 그들의 철학이 진리와 맞붙을 정도로 유구한 세월 속에서 천문학적으로 많은 이에게 의미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를 포함해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검증된 철학자들의 생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생한 철학 경험이다.
소요시간 몇 분 / 도구 대화 / 효과 안정감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끝도 없이 떠들어댄다. 입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완벽하게 성공했을 경우, 당신 귀에는 정말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안 들리게 될 것이다. 훈련을 조금만 더 하게 되면, 그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물론 진정한 승부는 상대가 이런 낌새를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데 달렸다. 따라서 이번 체험의 최종 목표는 당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상대가 전혀 감지하지 못하게 하면서, 가능한 한 완벽하게 그 대화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타심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다.
—『일상에서 철학하기』 099 「수다쟁이 참고 견디기」

하지만 이보다 더 쉽거나, 혹은 행위로서 ‘철학’ 그 자체를 재미나게 맛볼 수 있는 책을 원한다면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그야말로 일상에서 해볼 수 있는 101가지의 기상천외한 ‘철학’법 및 그 의미와 효과를 소개하는데, 들여다보노라면 「오줌 누면서 물 마시기」 「버스 기다리며 무서운 상상하기」 「햇살 속의 먼지 관찰하기」 「모르는 여자에게 아름답다고 말하기」 등 ‘이게 정말 철학인가’는커녕 ‘제정신인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눈 딱 감고 해보면, 또 책에서 건드려주는 의미를 곱씹어보면, 묘하게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근본적이고도 순수한 조각들을 건져 올리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마치 ‘인생’이라는 턴테이블에서 ‘일상’이라는 LP판 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나’라는 바늘이 살짝 들어 올려진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