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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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8

철학, 철학 하는 사회, 철학을 아십니까?

Editor. 지은경

인간관계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완전한 것이란 없는데 모순되게도
우리는 참 그런 것만을 바라니 늘 실망감을 맞이하는 것 같다.

『마르크스라면 어떻게 할까?』 개러스 사우스웰 지음,
시그마북스

중학교 때 일이다. 엄마 친구 아들이 명문대학교에 입학했다며 동창들 사이에서 한동안 떠들썩했다.
“그런데 무슨 과래?”
“철학과래.”

“……”
그리고 뒤이어 한 친구가 이렇게 얘기했다.
“거기 나와서 도대체 뭘 해? 철학관이나 차리려고?”
여기서 철학관이란 사주와 궁합을 보거나 작명을 하는 사무실을 일컫는 말이다. 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때는 이와 같은 대화가 매우 일상적이었다. 대학은 학문을 다지는 곳이라기보다 사회에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곳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와 같은 질문에 졸업 후 무엇을 할지 제대로 이야기 못 하는 건 당연한 이치고, 그때는 어설픈 얼간이가 아니면 학점이 모자라 그 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겠거니 함부로 판단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철학에 몹시 목마른 모습을 하고 서점가에서 철학 관련 서적을 뒤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쉬운 철학 입문서 추천을 부탁하는 사람도 은근 많다. 즉 남이 다
해 놓은 밥을 직접 떠서 씹어 먹는 것조차도 귀찮으니 죽을 만들어 떠먹여 달라는 말이다. 물론 철학의 부재가 몰고 온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바라볼 때 이제라도 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일까도 생각해보지만, 과연 철학에 대한 이 관심이 다만 지나가는 하나의 유행일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사실 철학 입문서로 많은 책을 추천할 수 있다. 이미 그렇게 쉬운 문장으로 써 놓은 책들도 몇 권 추천해봤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너무 어려워서 단 열 장도 읽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나처럼 어휘력이 달리는 사람도 금방 읽을 수 있는 문장들인데 왜 어렵게 느껴졌을까? 어쩌면 삶과 바로 직결되기보다 한참 생각해 보아야 할 문장들이어서 금방 질려버린 것이다. 영화의 지루한 장면은 잘도 참아 넘기면서 왜 단 몇 페이지의 준비단계는 참을 수 없는 것일까? 이 또한 철학 부재의 산물이 아닐까?
그런 사람들에게 마지막 남은 솔루션을 여기 제시한다. 이 책 『마르크스라면 어떻게 할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읽을 필요도 없다. 차례 페이지에서 그때그때 일상에서 만나는 고민을 찾아 책장을 펼치기만 하면 된다. 마치 공부방 책꽂이에 꽂힌 사전처럼, 침대 머리맡에 놓인 얇은 시집처럼, 부엌에 돌아다니는 요리책처럼 필요할 때 열어 조언을 구하면 된다. 또 책에 나타난 무수한 일상 속 문제나 의문들은 언뜻 철학과는 관계없어 보이지만, 모든 것에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책은 아주 쉽고 친근하게, 그러나 전혀 가식적이지 않게 설명한다. 친구가 내게 그만 뚱뚱해지라고 구박할 때, 자전거 헬멧을 안 썼다고 경찰한테 걸렸을 때, 서 있거나 앉은키가 큰 앞 사람 때문에 좋아하는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없을 때, 뉴스가 의심스러울 때, 직업과 신념이 충돌할 때 등등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물음에 마르크스, 밀, 롤스, 니체, 촘스키, 데카르트, 칸트, 플라톤 등 많은 철학자가 어렵게 써 놓은 글들을 아주 간단하지만 명확하게 해석해 제시한다. 마치 필요할 때 철학자가 각각 불쑥 튀어나와 이런저런 조언이나 고민 상담을 친절히 해주는 것 같다. 즉 이 책은 철학을 부담 없이 즐겨보고 싶은 사람, 또는 그동안 철학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 엄두도 못 냈던 사람들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이다. 만약 이 책조차 잘 읽히지 않는다면 그때는 철학과의 인연이란 없으니 미련은 과감하게 버리길 권한다. 아니면 꾹 참고 읽는 연습을 먼저 하든지.
그런데 명문대 철학과에 입학했던 그 오빠는 지금 무얼 하고 있냐고? 미국의 유명한 만화 회사에서 채색 일을 하며, 음악 밴드도 결성해 주말마다 작은 펍에서 공연도 하며 잘살고 있다. 역시 대학교 전공과목과 밥벌이가 꼭 직결되라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