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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8

행복하라는 얘기가 지겹다고요?

Editor. 이희조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하고 느낄 때 있으시죠?
뒤돌아 후회하지 말고 미리 읽어두면 어때요? 이럴 때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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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지음,
사회평론

요즘에는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로 강연을 여는 게 유행인 듯싶다. 일종의 분위기 환기 효과를 노리는 것 같은데 이곳저곳에서 반복되니 사람들을 당황하게 해 “여러분은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내 강연을 잘 들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삐뚤게 들리기도 한다. 여하튼 이제 행복을 논할 만큼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서인지 혹은 이 사회가 너무 불행해서인지, 행복이라는 것이 일종의 성취 대상처럼 쓰이고 설교 되고 받아들여지는 경향
이 있다. 보통 그들의 메시지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인 경우가 대다수인데, 정작 실제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주위에 별로 없고 하니 ‘행복하기’가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처럼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이렇듯 과장 조금 보태 행복 강박 사회에 살다 보니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건가?’ ‘꼭 인생이 행복해야 하나?’라는 반발심이 들 때가 있다. 행복이 성취 가능한 대상인지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노벨 문학상 수상 등 20세기 최고의 사상가로 뽑히는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이 주는 뉘앙스도 이와 비슷하다. 행복을 정복한다니, ‘영어 정복’ ‘뱃살 정복’ 이란 얘기는 들어봤어도 행복을 정복한다는 얘기는 처음이다. 진짜 아저씨까지 우리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복은 마치 무르익은 과실처럼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세상은 피할 수 있는 불행, 피할 수 없는 불행, 병, 정신적 갈등, 투쟁, 가난, 그리고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개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불행의 원인들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러셀에 따르면 원시사회가 지금보다 불행했던 이유가 있었듯 문명사회가 원시사회보다 조금 더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하루하루 긴장하며 살아야 했던 옛날보다 농경사회 이후의 삶은 외부의 위협이 적어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늘어난 삶의 권태는 오히려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됐다. 단조롭기 짝이 없는 중세기 농촌의 겨울, 촛불 몇 대에 의지하며 책도 읽을 수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청춘을 생각해보면 쉽다. 물론 현대로 넘어오면서 오락, 여가 생활 등 권태를 물리칠 자극이 늘어났지만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삶의 싫증을 견딜 힘을 어느 정도 기르지 않고서는 불행해지기 쉽다.
‘행복하라’는 말도 아니꼬운 이 글의 필자 같은 족속들의 인생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습관이나 도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 맞는 친구나 사회적인 통념에서 자유로운 노동 환경을 가진 게 아니라면 사는 게 고독할 수밖에 없다.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이 부분을 ‘세상과 맞지 않는 젊은이’라고 재밌게 제목을 붙였다.
다행인 것은 러셀이 이렇게 책까지 쓴 이유는 앞서 인용했듯 이것들이 “피할 수 있는 불행”인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러셀이 밝히기를 자신 또한 겨우 다섯 살 때 자신의 앞날에 견딜 수 없는 권태의 그림자가 놓여 있음을 느꼈으며, 청년 시절엔 언제나 인생을 증오하고 자살할 우려가 많았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자살을 방지한 것이 있었으며(이건 책에서! 힌트: 러셀의 역설), 앞으로도 인생이 해마다 더욱 즐거워질 것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는 네 번의 결혼 생활을 즐겼고 98년이나 살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행복하라’는 메시지도, 행복이 불가능한 미션이어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가이다. 사람들은 실은 행복보다 성취, 명예, 돈, 우월감 등을 더 중요시하면서 동시에 행복하지 못한 것에 서운함을 느낀다.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마치 무르익은 과실처럼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이런 세상과 맞지 않는 젊은이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