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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8

여자다움, 그런 거 없어요

Editor. 최남연

불편하지만 필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상상력과 용기를 나누어요.

『여자다운 게 어딨어』 에머 오툴 지음
창비

지난 글에서 남녀라는 성기 중심적 구분과 이 이분법을 기반으로 하는 양성평등 개념에 ‘반대’하는 내용의 책을 소개했다. 생물학적 성별은 애초에 한 인간 개인을 이해하는 데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며, 무엇보다 단 두 개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성과 남성이라는 명명과 구분이 이토록 널리, 자연스럽게 쓰이는 이유는 그것이 끊임없이 사회문화적으로 강조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을 서로 다른 존재로 편 가르고 선 긋는 세계 속에 산다.
생물학적 성이 섹스sex라면 이번 글에서는 사회적인 성, 젠더gender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거칠게 압축하자면 젠더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기대되는 성이다. 여자에게 요구되는 여자다움, 남자에게 요구되는 남자다움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간단히 말해, “여(남)자가 ~해야지” 형식을 갖춘 모든 말과 그 속에 담긴 기대, 궁극적으로는 실천이 바로 젠더다.
이 기대는 한 인간의 생애주기에 걸쳐 있는데, 예를 들면 여자가 얌전해야지, 짝꿍이 괴롭히는 건 널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 참아야지, 교복 치마를 입을 땐 다리를 벌리고 앉지 말고, 대학에 왔는데 화장은 왜 안 하니, 결혼은 더 나이 들기 전에 해야지, 애는 그래도 엄마가 봐야지, 남편 밥은 챙겨주고 나와야지 등이다.
남녀의 정신에 내재된 생물학적 차이란 별로 크지 않다. 그것을 종종 우려스러울 만큼 커다란 차이로 벌려놓는 것은 우리가 남성의 신체를 지닌 사람과 여성의 신체를 지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여자이거나 남자였다기보다,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성별에 걸맞은 삶의 양식과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받는다. 그 결과 여자나 남자로 만들어진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제2의 성』(1949)에 쓴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유명한 말은 젠더 논의의 문을 열었다. 뒤이어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젠더 트러블』(1990)이 등장한다. 그는 이 책에서 ‘여자다운 행동을 함으로써 여자가 되는’ 현상을 젠더가 갖는 수행적 성격performativity이라고 정의했다. 규범에 순응하는 매일매일의 행동이 모여 개인을 만든다는 것이다. 한편, 거꾸로 생각해보면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은 엄청난 전복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여자다운 행동을 함으로써 여자가 된다고 할 때, 여자다운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규범에 도전할 수 있는 힘 역시 나에게 있다.
버틀러의 관점에서 우리 모두는 젠더를 다르게 수행하고, 주어진 역할 바깥에서 행동하고, 그럼으로써 체제를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쯤에서 『여자다운 게 어딨어』를 소개한다. 책의 부제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이다. 무슨 실험이냐고? 바로 젠더를 사회 통념과 다르게 수행해 본 작가의 이런저런 시도들이다. 예를 들면 핼러윈에 남장하기, 겨드랑이는 물론 온몸의 털 기르기,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도시를 돌아다니기, 일상 언어에서 인칭대명사 ‘그’와 ‘그녀’ 대신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그들’ 사용하기 등이다. 보통 여성학 학위자가 쓰는 다른 책들과 달리, 저자 에머 오툴Emer O’Toole은 연극학 박사이자 교수다. 나보다 한 발 앞서 다르게 행동하며 관습에 도전하고, 지속하며 그 경험을 분석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조언자다.
『여자다운 게 어딨어』에는 젠더를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여성학, 사회학 이론과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 유머가 적절히 섞여 있다. 젠더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으나 이론서는 망설여졌던 이라면 읽어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참고로, 저자는 2012년 영국의 TV 프로그램 <디스 모닝This Morning>에 출연해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보란 듯 번쩍 들어올리는 퍼포먼스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래도 겨우 털을 기르는 게 무슨 소용 있느냐 묻는다면 뭐든 하나씩, 차근차근 시작해보는 거라고 대답하련다. 다리 안 모으고(?) 앉기, 결혼식이나 면접에 바지 입고 가기, 화장하지 않기 등 일상적인 것부터. 나부터, 오늘부터. 여자다움, 그런 거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