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8

모르는 사연

Editor. 김선주

읽고 싶은 책은 날로 늘어가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독자.
작은 책방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책들을 수집 중.

『누가 가장 억울하게 죽었을까?』 김승열, 김혜진 지음
머쓰앤마쓰

뉴스를 보면 매일 사건과 사고, 그로 인한 누군가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보이는 죽음이지만 많은 사람이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이렇게 함께 애도할 수 있는 죽음의 수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끔찍하거나 비통하거나 때로는 황당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뉴스의 관심 밖에도 수없이 많다. 누군가 새 삶을 얻는 순간에 누군가는 삶을 잃지만, 과연 그 죽음 중 우리가 명복을 빌어줄 수 있는 죽음이 몇이나 될까.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수백, 수천의 죽음. 『누가 가장 억울하게 죽었을까?』는 그런 알려지지 않은 죽음들을 이야기해보고자 카피라이터 광고회사의 상사와 후배가 만나 함께 쓴 책이다.
이야기는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섬뜩한 직업으로 온라인에서 이슈가 된 남자의 하루를 따라가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자의 직업은 알려지지 않은 죽음을 인터넷방송으로 알리고 애도하는 ‘사(死)연’ BJ다. 마치 신문에 부고란이 있어 누군가의 죽음을 알릴 수 있듯, 방송을 통해 죽음의 사연을 받아 이야기해주며 감상을 나눈다. 이날 방송에서는 “누가 가장 억울하게 죽었을까?” 라는 일종의 경합이 열린다. 이제 여기서부터 억울하다 싶은 열 개의 사연이 하나씩 소개된다. 사고, 날씨, 범죄, 자살, 자존심, 일 등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죽음은 너무 안타깝고, 어떤 죽음은 너무 황당하며, 어떤 죽음은 미안하다. 각 이야기는 소설, 편지, 내레이션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되고, 무거운 주제임에도 담백하게 저마다의 색으로 그려진다. 결국 결말은 죽음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읽는 동안은 더없이 평범하고 있을 법한 그들의 ‘삶’에 집중하게 된다. 모든 사연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하여 상상을 덧붙인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것들이라, 진짜 있었거나 혹은 실제로 있을 법한 주위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까지 주지해야 할 것은 경합이기 때문에 이 열 개의 사연 중 가장 억울한 죽음을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죽음이 다 안타깝고 억울한데 그중 으뜸을 골라야 하는 청취자나, 심지어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어쩐지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에 순위가 있겠냐마는 어쨌든 하나를 선정한다는 전제가 있다 보니 (심지어 실제 본인들의 메일 주소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내 달라는 진심인지 소설인지 모를 말도 있다 보니)저절로 어떤 죽음이 가장 억울한가 생각하게 되는데, BJ 윤성준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죽음의 사연을 골랐던 것처럼 결국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와닿는 사연이 가장 억울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나였다면’ ‘내 주변 사람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누군가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애도하게 만드니까.
책에는 중간중간 다른 사망 소식이 담긴 뉴스 일러스트가 등장하는데, 이 ‘골라진’ 죽음은 알려지지 않은 열 개의 사연과 대비되며 더욱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사연 없는 인생 없고, 사연 없는 죽음도 없다. 찰나의 시간에 벌어지고 사라지는 일이라 ‘죽었다’는 사실에 매몰되기 쉽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사연과 남겨진 사람들의 삶도 ‘죽음’에 포함된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나와는 먼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기꺼이 애도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연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나마 뉴스에 나오지 않아 사연을 몰라 애도하지 못하는 다른 죽음들을 생각해본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이 죽음을 함께 슬퍼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이 슬픔을 나눠줄 사람
내게 세상의 빛에 대해 얘기해 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