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8

정말 확실한가요?

Editor. 이희조

소소하지만 확실한 책 추천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이른바 ‘소확행’은 2018년 가장 유행한 단어 중 하나가 아닐까. 집에서 귤 까먹으며 뒹굴뒹굴하는 일상의 소소한 낙부터 고급 수제 맥주 한 잔의 행복까지, 사람들은 이곳저곳에 행복이라는 말을 붙이고 위안을 얻기 시작했다. 근데 진짜 행복하세요?
소확행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이 하루키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그의 소설 속에는 분명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한 개인주의자가 자주 등장한다. 근데 그런 주인공들은 대부분,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롭다는 특징이 있다. 『1Q84』의 ‘아오마메’는 엄청난 재력을 가진 노부인이 뜬금없이 나타나 거액의 수표를 주며 살인을 맡기는 킬러고, 『기사단장 죽이기』의 ‘나’ 또한 천재적인 실력으로 재벌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직업 화가이다.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자면 이렇게 수입이 넉넉한 주인공들이기에 고급진 혼술이 달게 느껴지는 게 아닐는지. 이와 달리 지금 우리 사회에 부는 소확행 열풍은 잠깐의 즐거움으로 현재의 불안과 고통을 피하려고 나온 임시 처방전처럼 보인다. 진짜인지 여부는 몇 년 후면 밝혀질 것이다.
나중에 실망하기 전에 『스토너』를 조심스레 권해본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 남자의 일생을 다룬 소설인데, 출간 50년 후 뜬금없이 유럽에서 반향을 일으키면서 2년 전 한국에도 출간되었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고, 반전도 없는 이 남자의 삶이 지금에야 주목받은 것은 우리의 현실이 스토너의 평범함마저 부러워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 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 태어난 사람의 일생마저 우리 눈에 평범해 보인다니.
소확행에 뺨 맞은 사람한테 ‘평범해지는 것도 어려운 세상’이라는 메시지를 구태여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는 얘기도 아니다. 그렇게 특별할 건 없지만 스토너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성실하게 설명하고 있는 소설이라서 그렇다. 그것은 돈이나 명예도 아니었고, 기댈 수 있는 가족도 아니었고, 사랑하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는 평생 교수로 지내긴 했지만, 주변 동료로부터 외면받았고, 결혼 관계에선 아내와 행복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충실하진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충실했던 것은, 또 다른 것이었다.
소소한 행복이라도 누리자는 현재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그만큼 불안한 사회를 대변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무엇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에서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의미를 찾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일 것이다. 다만, 의미가 없는 삶만은 아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