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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7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면

Editor. 박소정

잔병치레가 잦아 각종 건강 정보를 두루 섭렵 중.
집사가 될 날을 고대하며 동네 길고양이들과 교감 4년 차.
삶의 균형을 위해 생각은 적게, 몸은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염소가 된 인간』 토머스 트웨이츠 지음
책세상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그들의 삶을 동경하게 되어 자연스레 고양이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사뿐사뿐 우아하게 내딛는 발걸음과 보송보송한 털 그리고 우주를 담은 것 같은 영롱한 눈 때문만은 아니다. 무척 예민한 동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달아나지만, 평소에는 당당한 기품을 잃지 않으며 한낮의 햇빛을 늘어지게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도 몸에 배어 있다. 멍하니 사색에 잠긴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노심초사’ ‘안절부절’과 같은 속세의 말은 인간의 몫이라는 걸 절감한다. 이 모습이 어디까지나 화려하고 단편적인 모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고양이로 태어날 거야.”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이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하나같이 어이없어 웃거나 4차원이라고 나무라기도 한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존재론적 고민(?)에 빠질 때쯤 이 책이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영국의 평범한 ㅊ청년이자 디자이너인 토마스 트웨이츠는 어느 날 문득 동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참고로 그는 몇 년 전 맨손으로 원재료 채취부터 조립까지 직접 하여 토스터를 만드는 『토스터 프로젝트』로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다. 프로젝트 이후 잘나가는가 싶었지만, 딱히 직업 없이 긴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30대 중반을 앞둔 그는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걱정이 고뇌로 넘어가자 그는 ‘과연 인간은 존재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다다른다. 때마침 그의 옆에 있던 강아지 ‘노긴’이 눈에 띈다. 네 살밖에 안 된 어린 조카도 걱정을 하고, 궁전에 사는 여왕도 걱정을 하는데, 노긴은? 그는 노긴에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욕구가 있지만 걱정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동물의 삶을 살아 보기로 말이다.
문명의 함정들과 골치 아픈 모든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보기, 온 사방에서 자라는 녹색식물에서 만족스럽게 자양분을 얻으며 지내보기. (중략) 풍경 속을 빠르게 질주하며 자유를 만끽하기! 잠시 동물이 되어본다면 멋지지 않을까?
그는 이곳저곳에 자신의 프로젝트를 알린 끝에 운 좋게도 영국 생명과학연구소 ‘웰컴 트러스’의 후원을 받게 된다. 처음 그가 되고자 한 동물은 ‘코끼리’였다. 하지만 코끼리를 직접 마주한 그는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에 서둘러 계획을 변경한다. 이후 여차저차 덴마크의 한 주술사까지 찾아가게 된 그는 ‘염소’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염소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어릴 적 손을 쓰지 않고 화분의 잎들을 먹으며 느낀 심오한 기분을 아직까지 기억한다고 전한다(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프로젝트에 돌입한 그는 영혼부터 마음, 몸, 생활방식까지 염소가 되기 위해 모든 방법을 찾아 나선다. 우선 염소 행동 전문가를 찾아 염소의 행동과 습성을 배우며 염소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깨달아간다. 뭐든지 갉아 먹을 것 같은 염소는 사실 식성이 까다로워 먹을 만한 것을 발견해도 쉽게 입을 대지 않으며, 대부분 생물이 그러하듯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또한 성별로 분리된 집단에서 생활하며 위계질서가 강해 웬만하면 별 탈 없이 잘 어울려 지낸다. 또한 그는 염소와 어울려 지내기 위해 수의대와 의수족 클리닉의 도움을 받아 염소 의족을 만들어 신어 네 다리로 걷고, 염소들과 함께 풀을 먹을 수 있도록 실리콘으로 제작된 인공 반추위까지 만들었다. 수 개월간 우여곡절 끝에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염소 떼가 뛰노는 스위스 알프스 언덕에 섰다. 염소 옷과 각종 보호대, 의족, 반추위까지, 인간에게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진심의 힘일까? 놀랍게도 그는 염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함께 풀을 뜯다 보니 염소들은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몇몇은 다가와 냄새를 맡으며 호기심을 보였다. 그중 18번 염소는 유독 그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며 함께 다녔다. 비록 체중의 반 이상이 앞으로 쏠린 채로 겨우 걷고, 이제까지 먹은 풀보다 더 많은 풀을 먹고 인공 반추위에 뱉는 행동을 반복하며 고생했지만,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경험을 하며 동물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을 돌이켜보게 됐다.
그가 양 떼와 어울릴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돕기만 했던 농장 주인은 프로젝트가 끝난 뒤 그와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한다. “당신은 도시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미친 거예요. 산 위에서는 그런 미친 생각이 필요하지 않아요.” 아, 정녕 도시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고양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는 순간만큼 표면상 도시로 불리는 것(빌딩 숲, 지옥철, 경쟁, 여유 없는 삶…)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고양이가 되고자 하는 바람은 진짜 고양이의 삶이 아니라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깨달음과 더불어 오늘도 치열한 삶을 사는 고양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들도 나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려 주리라. 아, 역시 인간은 이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