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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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7

삶을 향한 진솔한 허풍의 세계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북극허풍담』 요른 릴 지음
열린책들

북극의 적막 한가운데 서 있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지. 혹은 우주 한가운데 떠서 절대 고독과 마주하는 상상은? 매일 여러 사람과 만나 말해야 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상상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혀 상상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또한 의심스럽다. 절대 고독, 그것도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자신이 작고 미개한 생명체라는 진실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면 우리의 기분은 어떨까? 정말 적막과 두려움뿐일까?
북유럽과 프랑스 등에서 소설과 만화책으로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있는 『북극허풍담』은 북극의 고독 한가운데서 아우성치는 인간,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감정들을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또 어둡지만 어둡지 않게 소개하고 있다. 밤이 긴 계절, 햇빛 없이 살아가야 하는 그곳은 침울하고 춥고 어둡지만, 책의 등장인물과 화자는 이와 같은 상황을 진솔하게 그리면서도 ‘그저 별일 아니’라는 투의 화법을 사용해 편안한 마음을 유도한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북극엔 실로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낚시를 하다 곰을 만나고, 보살피던 수탉이 겨울의 긴긴밤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 애통해하며 괴짜들과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극한 상황에서의 고독한 삶에 젖은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삶에서 두려울 것도, 아쉬운 것도 없다. 그저 환경에 순응하며 가벼운 농담들을 이어 나갈 뿐이다.
또한 그들 모두는 자신이 속한 북쪽 지방의 추위를 견디며 나름의 역사관을 펼친다.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 즉 문명 세계의 인간(바로 우리와 같은)은 대수롭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주절거리며 서술하여 역사라 부른다며 비꼰다. 북극의 추위 속에 사는 그들은 선사시대 조상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그리 큰 변화가 없다. 여전히 낚시를 하고 곰을 만나 사냥을 하고 물범 가죽으로 바느질을 해 옷을 지어 입으며 기나긴 적막을 술과 잠으로 이겨낸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언제나 생존과 맞서야 하며, 하루에도 생사를 오가는 중대한 일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그들의 인생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의 발자취라는 것이다. 그들은 북극의 원주민들이 아니다. 문명 세계에서 살다가 북극에 파견된 사냥꾼들로, 문명 세계를 천대하고 나름의 유머와 애수를 가진 사람들이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문명 세계와 대자연의 관계, 인간애, 그리고 공동체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덴마크의 작가 요른 릴은 1931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났다. 탐험가이기도 했던 그는 19살 때 라우게 코크 박사의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함께 나섰다가 북극의 매력에 감화되어 16년 동안 정착해 살았다. 그곳에서 그는 사냥꾼들이 겪은 놀라운 경험들을 들으며 지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또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허풍담skrøner’이라는 새로운 장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는 수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의 이야기들이 세상에 알려져 빛을 보게 된 계기 또한 이 책 속 허풍담과 그리 멀지 않다. 북극 사냥꾼들에게 책을 무게로 달아 판매하는 한 책장수가 그의 원고를 몰래 빼돌려 한 출판업자에게 넘겼고 이후 이 이야기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각각의 이야기는 단독적인 에피소드이면서도 모든 이야기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열린책들에서 3권까지 출간된 후 절판된 상태다. 다음 권의 출간 여부는 독자들에게 달려있다는 출판사의 작은 메시지가 제3권의 표지에 쓰여 있었는데, 이후 제4권이 출판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 그리 큰 인기를 끈 것은 아닌 모양이다. 조만간 다른 출판사에서 전 10권이 출간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중고서적으로 3권의 책을 모두 구입할 수 있으며 책의 상태 또한 매우 깨끗하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찾기보다는 실용적이거나 자신의 내면을 파헤치는 책에만 열의를 올리고 있다. 그러한 책들이 덜 좋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세상 어느 것이나 그러하듯, 독서에도 다양성이 좀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들을 세계인들과 더 많이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책이 좋은 이유는 먼 곳의 이야기, 그리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점인데 그런 의미에서 『북극허풍담』은 앞의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재미있고, 또 나름의 슬픔과 애환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