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rch, 2019

나는 나

Editor. 김선주

읽고 싶은 책은 날로 늘어가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독자.
작은 책방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책들을 수집 중.

『오무리 이야기』
장아영 지음

시, 에세이, 소설, 만화, 사진집 등 분야와 장르를 막론하고 온갖 새로운 시도가 벌어지는 독립출판물의 세계에 그림책이라고 없을까. 여행이나 음식 드로잉북이야 이미 많고, 일러스트북이나 개성 넘치는 삽화 그림도 여기저기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다못해 이 지면에서 그간 소개했던 책 중에도 그림을 활용한 재밌는 기획의 드로잉북이나 만화가 몇 권이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림이 첨가된 책에서 의미를 더 좁혀, 그림이 주체가 되어 동화 형식으로 펼쳐지는 그림책을 찾기 위해선 조금 더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렇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찾아보면 독립출판물에도 멋진 그림책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 ‘오무리’라는 아이가 있다. 오물 덩어리들이 몸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오무리는 오물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에 시달리던 오무리는 결국 오물들을 모조리 떼어 상자 안에 가두어 깊은 곳에 숨긴 채 도망친다. 드디어 바라던 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자신을 오무리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찾아온다.
오무리는 울음을 터뜨렸다. 꼭꼭 숨겨둔 오물들이 곧 오무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또 다른 오무리를 통해 진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을 깨달은 오무리는 결국 그와 함께 숨겨놓았던 상자를 찾아 나선다. 오무리는 과연 상자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진정한 ‘나’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오무리 이야기』는 일러스트레이터 ‘집시공화국’으로 알려진 장아영 작가가 펀딩을 통해 내놓은 독립출판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되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과 중요성을 깨닫고 이러한 물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린 책이다. ‘세상이 원하는 나’로 살아가려 애쓰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어른을 위한 그림책으로 사랑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자신의 오물이 남들에게 묻을까, 혹시 오물로 판단 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상자 속에 꽁꽁 숨겨 놓는 오무리처럼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 감추고 싶은 부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자신을 세상이 원하는 모습으로 포장하곤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멋진 나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말이다. 하지만 오무리 이야기는 말한다. 숨기고 싶은 모습도 결국 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나를 더욱 빛나게 해줄 장식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한테 멀어진다는 건 죄악이야.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의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헤르만 헤세, 『데미안』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이 조금 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 나일 수 있는 모습과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 사이에서 우리는 끝없이 갈등하고 화해한다. 그리고 그 갈등이야말로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과연 우리가 숨겨 놓고 애써 잊으려 하는 낡은 상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리고 언제쯤 어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빛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 힌트는 오무리에게 들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