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rch, 2019

운동을 시작해 볼까요

Editor. 최남연

다음 달부터 당장 운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이름을 최 코딱지로 바꾸겠습니다. 진짜로요.

『마녀체력』
이영미 지음, 남해의봄날

체육 시간이 되면 반장이라는 권위를 이용해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가 갖은 핑계를 대며 오늘은 운동장에 나가지 말고 자습을 하자던 학생이 있었다. 시험 기간이니, 날이 더우니, 날이 추우니, 날이 적당하니(?) 오늘은 교실에 있자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다른 반은 한창 수업 중이라 사람이 없는 화장실을 마음 놓고 쓰거나 공부를 했다. 그렇게 수험 생활을 보냈으니 대학에 와서도 운동은 남 일이었다. 그 결과, 어느 날 허리 디스크로 이틀간 병원에 입원하고 MRI 비용으로 45만 원을 쓰게 된다. 누구 얘기냐고?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내 얘기다.
“운동은 남 일이었다”는 나뿐 아니라 대부분 여성에게 해당하는 문장일 것이다. “쉬는 시간 10분도 가만히 못 앉아 있고 공이라도 한번 차고 들어와야 하는” 이와 “칠칠치 못하게 넘어져 얼굴에 흉 나면 안 되는” 이가 나뉘어 있는 사회에서 운동장의 주인은 정해져 있다. 운동을 하며, 해도 되는 이는 남성이다. 내 기억 속 운동장은 그 위에서 뭔가를 재밌게 하거나 크게 넘어져 어딘가를 다치거나 했던 곳이 아니다. 옆으로 지나갔고 창밖으로 바라봤다. 그러니 운동은 남 일, 나아가 하기 싫은 일, 하면 힘든 것이 됐다.
여기에 유쾌한 일갈을 가하는 책이 있다. 한 여성이 무릎에 빨갛게 상처가 난 채 자전거를 들쳐메고 있는 모습을 표지로 삼아 마흔이야말로, 아니 바로 지금이야말로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임을 주창하는 이영미의 『마녀체력』이다. 허리 디스크로 입원한 첫날 근 10시간을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은 채 누워 침대 신세를 졌더니, 정말 이제 핑계는 그만 대고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다짐하던 차에 발견한 책이다. 편집자 일을 오래 하던 여성 저자가 어느 날 자전거, 아침 수영, 달리기, 그리고 철인 3종(!)을 해치운다는 이야기에 개인적으로 더 혹해 구매했다.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던 선배인 데다가 해가 진 뒤 밤부터 원고를 펴 놓고 일을 시작하는 생활 습관까지 나와 똑같아 왠지 그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녀체력』은 목차가 조금 특이하다. ‘내 몸이 서서히 강해지는 동안’ ‘하나둘 행동이 바뀌고’ ‘이런저런 생각이 변하면서’ ‘그리하여,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다’가 각 장의 제목이다. 무작정 권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운동을 시작하기로 처음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며, 여러 시행착오도 겪고, 그러면서 체력과 함께 마음이나 삶의 태도에도 찾아온 변화를 독자에게 차근차근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또, 여성으로서 꾸준한 운동의 경험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남자를 이겨 보는 경험은 비단 스포츠의 장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일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눈빛이 흔들리지 않으며, 태도에 결기가 생긴다. (…)그러니 여성들이여, 뭐든 좋으니 운동을 하면서 일단 체력부터 단련해 보자. 몸을 날씬하게 하기보다는 근육을 단단하게 만드는 운동을 택하기 바란다. 이왕이면 남자들과 어울려 동등하게 겨루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보기를! 어차피 우리는 평생을 그들과 기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 몸에 가득한 잠재력도 깨닫지 못한 채 고작 30%의 에너지만 끼적대면서” 살았을 것이라거나 “몸과 마음이 함께 모험하지 않는데, 어떻게 삶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겠나” 같은 부분에서 덜컹 마음이 내려앉았다. 여태 몸으로 뭔가를 해 본 적이 없는데, 너무 많은 경험을 이미 흘려보낸 것은 아닌가 후회됐다. 소설가 정세랑이 “오로지 축구에 대한 에세이면서 동시에, 축구를 비유로 하여 여성의 온몸과 온 삶과 온 세계에 대해 엮은 책”이라는 추천사를 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의 저자 김혼비와 동료들은 성인이 되어 우연히 축구를 시작했다가 ‘아,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나도 사실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려나? 일단 시작해보면 알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