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7

살다살다 이런 책이

Editor. 박중현

중요한 것은 결과.
나아가게 하는 것은 과정.
올바르게 하는 것은 문득 떠올릴 만한 미소.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주진우 지음
푸른숲

다 읽었다. 읽으며 남겼던 메모들을 펼치고 글을 쓰려는데 영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 정리한 메모를 보니 여러 가지 의미로 ‘이렇게 써도 되나’ 싶다. 깜빡이는 커서와 애꿎은 눈싸움을 벌인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나’ ‘그저 책의 내적인 부분만 이야기하는 게 맞나’ 따위의 생각이 어지러이 신경을 돌아다닌다. ‘애초에 이 책으로 책 내적인 이야기만 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의문도 따라온다. 메모는 치워버리고 세수나 하고 온다.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그리고 든 생각이 본 글의 제목이다.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웃기다. 세상천지에 이런 책이 나온 건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 우리나라 아님 없을 것 같다. 가히 ‘제목=내용’이지만 책 내용에 관해 한 줄 더 부연하자면 이 책은 『시사IN』의 주진우 기자가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의 비자금을 추적해 온 기록이다. 그는 실제로 이명박에게 과거 두 개의 특검(BBK, 내곡동 사저)을 선물한 바 있다. 비록 특검에만 그치긴 했지만. 어쨌든 ‘웃음’이 나온 이유는 사실 대단하지 않다. 딱히 어느 쪽을 향한 조소가 아니다. 그냥 새삼 우리나라를 되새기게 되었다고 해둔다.
책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돌이켜 생각해도 참 희한한 독서 경험이었다. 가독성부터 신선하다. 결론부터 말해 ‘잘 읽히는’ 책은 아니다. 글 자체는 별문제가 없다. 편집이나 구성 방식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금세 내용에 빠져들 만한 ‘미친’ 흡입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몰입을 긴 호흡으로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유도 신선하다. 화가 난다. 이 ‘화’에는 ‘알찬 콘텐츠’도 한몫한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땐 꽤나 묵직한 두께에 오해 아닌 오해를 했다. 사실 난 그간 주진우 기자를 잘 몰랐고, ‘무슨 책’인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몇 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서사 형식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으리라 지레짐작했다. 기자의 르포르타주 내지 개인적인 인생 역경 중심이겠거니 하고. 오해해서 부끄럽다. 책 한 권이 몽땅 비리의 기록으로 살뜰하다. 주 기자 얘기도 나오지만, 그가 출간 전 북튜버 ‘책읽찌라’와의 인터뷰에서 한 표현처럼 오롯이 “각하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책”이다. 책을 3분의 1 정도 읽었을 때 ‘설마 이게(책) 계속 이렇게 다 사건 하나하나로 엮인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생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게다가 하나하나가 기본 수백억원에서 수십조원을 넘나드는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자랑한다. 사건마다의 개별 플롯도 모두 최상급이다. 그 치밀한 수법과 일관된 목적의식은 <오션스 일레븐> 저리 가라다. 단언컨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접할 수 있다. 게다가 ‘실화 기반’도 아니고 현재 라이브로 진행되고 있는 실화다. 그야말로 완벽한 범죄물이니 딱히 정치적인 쪽에 관심없는 분도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겠다.
책에서 다뤄진 내용들에 대해 굳이 가치 판단을 내놓진 않겠다. 혹시 이미 내놓은 것 같다면 기분 탓이다. 모쪼록 읽고 스스로 판단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그게 이 책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의심 가고 못 믿겠으면 검색도 해보시고 관련 기록도 찾아보시라. 허튼소리 같아 화가 나시면 나와서 따져 물어주시라. 그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우리 얘기, 어디 한번 시원하게 떠들어 제껴보자”고, 나는 왠지 주 기자가 단발머리를 찰랑대며 그렇게 손짓하는 것 같다. 역시 책은 쌍방향 콘텐츠인가 보다. 몇 달 전까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사람 말이 들리는 듯한 걸 보니. 유행어에 둔감한 편인데도 요새 알게 된 말이 있다. 사용법도 간단하다. 그냥 언제 어디서고 무슨 맥락이든 끝에 덧붙이면 되니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 써먹어 보시길. 뿌듯한 마음으로 인용하며 마친다. 그래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