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 2020

왜 저래?

Editor. 박중현

한국소설을 좋아합니다. 씀, 읽음, 생각함, 이야기함 모두 곁에서 태어나 함께 자란 고민과 마음, 행동과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느린’ 매체를 구독하는 느낌이랄까요? 가끔 예전 책을 뒤적이고 자주 요즘 책을 들고 오겠습니다!

『미세먼지』
김효인 외 4명 지음
안전가옥

SF에서나 그려내던 미래가 곧 현실이 되거나 이미 현실임을 자각하는 데는 많은 방식이 있다. 이런 경우 보통 떠올리는 것은 언제까지나 상상 속에나 존재할 것 같던 기술의 상용화이지만, 사실 SF가 기술만을 다루지 않듯 자각의 촉매로 작용하는 것 역시 기술만은 아니다. 그리고 요즘 내게 가장 SF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다름 아닌 미세먼지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황사’와 구분이 모호했던 아주 약간 과거에 미세먼지는 어떤 계절이나 철에 시의성을 둔 존재였는데, 지금은 사시사철 포털사이트 혹은 어플리케이션으로 농도를 확인해야 할 정도로 ‘상용화’되었다. 지난 연말에도 미세먼지가 심해 마스크를 챙겨야 했던 몇몇 날이 떠오른다. 출근길에 지나는 양화대교 위로 보이는 하늘은 이미 뿌옇게 제 색깔을 잃었고, 하늘 아래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이미 훌륭한 디스토피아, 포스트 아포칼립스잖아!’ 생각했더랬다. 그래도 변치 않는 게 있으니 꿋꿋이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크게 웃고 떠들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내색하기 어려운 강한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남았다. 그 뒤로 미세먼지가 심한 날 아이들을 관찰하게 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버릇이 되었다.
지금의 하늘색,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내가 알고 있는 하늘색은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뿌연 연기에 강황 가루를 솔솔 뿌려 놓은 듯한 그런 색이다. —『미세먼지』 중 「우주인, 조안」
『미세먼지』는 ‘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가 되기를 꿈꾸며 다양한 장르서사를 기획 출간하는 ‘안전가옥’의 세 번째 앤솔로지 소설집이다. 그리고 책 제목이 잘 드러내듯 앤솔로지의 주제가 된 것이 ‘미세먼지’다. 미세먼지를 주제로 블랙코미디, SF, 추리극, 스릴러 등이 자유로이 발랄하게 엮였는데, 얘기해보려는 것은 이 중 ‘청춘 감성 SF’를 담당한 「우주인, 조안」이다. 작가가 후기를 통해 밝힌 설정에 따르면 무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뒤, “1년 365일 중 200일 이상의 미세먼지 농도가 200㎍/m³을 넘어가면서 인간의 수명은 급속도로 줄어”든 미래다. 마치 연주황 혹은 살구색이 더는 ‘살색’을 대변하지 못하듯, ‘하늘색’이 더는 연한 파랑을 가리키지 못하게 된 세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빛났다고 여겨지는 것은 바로 시대나 무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통찰인데, 이는 미세먼지의 99%를 방지하지만 5억 원을 호가하는 ‘청정복’의 유무로 나뉘어버린 인간의 두 ‘종류’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난다.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은 평균수명 100세를 누리는 ‘C(Clean)’, 입지 않거나 못 하는 사람들은 평균수명 30세의 ‘N(No Clean)’으로 불린다. 재미있는 것은 이 N이 마냥 우울하거나 침체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N은 이 수명과 자신의 선택에도 적응해 기초교육만 마치면 결혼하거나 직업을 갖는 등 오히려 C에 비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생활 방식의 차이 이상으로 둘의 간극을 강하게 환기하는 것은 차별과 배척, 몰이해의 시선이다. 실제로 제목에도 나타나는 여주인공 조안은 N이면서 대학에 다니는 모습 때문에 교내 C들 사이에서 “또라이”로 통한다.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을 텐데 공부를, 그것도 대학을 다녀서 뭐 하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조안은 미세먼지와 빗물이 무서워, 또 청정복으로 갈아입는 수고 때문에 위기에 처한 어린 강아지를 구하기 주저하는 C와 달리 비와 먼지와 구정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뛰어들어 자신의 셔츠까지 덮어줄 줄 아는 인간이다. 태생적으로 C의 방식에 ‘갇혀’ 있던 주인공 이오의 눈에 그녀가 들고, 이후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는 것은 바로 조안이 소설의 제목처럼 지구라는 행성에 어색한 ‘우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진짜야. 비가 내릴 때 이렇게 창문을 열고 있으면 비가 멈추는 순간에 하늘을 볼 수 있거든? 아주 잠시지만. 밤이면 먼지가 미처 메우지 못한 틈새로 까만 하늘이 무지개처럼 보여. 다들 볼 생각조차 안 해서 못 볼 뿐이지.” —『미세먼지』 중 「우주인, 조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