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 2020

20대의 불안

Editor. 김유영

페이지를 넘길 때 온몸이 따뜻해지는 책을 좋아합니다.
누구를 만나긴 귀찮은데, 위로가 필요한 날 읽기 좋은 책을 소개할게요.

『혼자 있기 좋은 날』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이레

『혼자 있기 좋은 날』은 주인공인 스무 살의 치즈와 일흔한 살의 할머니 깅코가 함께한 1년의 동거생활을 그리는 소설이다. 작가인 아오야마 나나에가 만 23세에 책을 집필했기 때문인지 소설은 20대 초중반인 주인공의 일상과 심리를 섬세하게 파고들어 비슷한 나이대에 머무르고 있을 독자들로부터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갓 독립하고 도쿄로 상경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이어나가는 스무 살 치즈. 집에서 길고양이들을 키우고, 이전에 돌봤던 죽은 고양이들의 사진을 벽에 걸어 놓는 할머니 깅코. 치즈가 도시에서 독립하기 위해 어쩌다가 먼 친척인 깅코의 집에서 얹혀살게 되며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그다지 친밀하지도, 두텁지도 않은 룸메이트처럼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는데, 함께 지내는 일상의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만큼 둘은 어느새 가늘면서도 튼튼한 실로 엮인 사이가 된다.
주인공 치즈는 ‘제대로 산다는 게 뭘까?’ ‘학교를 나오고 회사에 취직하는 걸 말하는 걸까?’ 하고 끊임없이 반문하는 인물이다. 인생에 관해 성찰하고 회의하면서도 다시 꿋꿋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는 일명 평범한 ‘청춘’이다. 사회에서 보통 따르는 길에 일찍부터 의심을 품었던 치즈는 무언가 목적을 세우고 업적을 이루려고 애쓰기보다 그저 물 흘러가듯 지금의 현실을 살아간다. 때때로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허무함을 느끼고 자조하다가 어느새 다시 권태로운 일상에 적응해 그럭저럭 지낸다. 그다지 비관적이지도, 그다지 낙관적이지도 않은 치즈의 현실적인 모습은 우리나라 20대의 보편적인 표상처럼 느껴진다.
나는 어엿한 인간으로 어엿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될 수 있는 한 피부를 두껍게 해서 무슨 일에도 견뎌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장래의 꿈이라든가 일생일대의 사랑 같은 건 아직 뭐 하나 그려지지 않지만, 그런 바람 비슷한 것만은 어렴풋이 지니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작년 이맘때, 대학 마지막 학기를 앞둔 겨울방학이었다. 졸업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을 할지, 앞으로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중요한 선택지를 앞두고 방황하던 시기였다.
예전에 나를 설레게 했던 꿈 혹은 대단한 존재가 되겠다는 야망은 이미 사그라든 지 오래고, 다가올 미래가 그저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때였다. 그런 때에 나는 나 못지않게 불안과 초조함이 가득했던 치즈를 만났다. 나와 비슷한 그녀의 감정을 읽으며 누군가가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비록 또렷이 그려지는 미래는 없지만, 어떤 일이든 견디겠다는 치즈의 바람을 곱씹으며 나 역시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는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여전히 내 삶에서 뭐 하나 잡히는 건 없지만, 그래도 꿋꿋이 살아보자는 다짐을 통해 내 안에서 솟구치던 불안감을 달랠 수 있었다.
“할머니,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저 같은 건 금방 낙오되고 말겠죠?
”세상엔 안도 없고 밖도 없어. 이 세상은 하나밖에 없어.”
깅코 씨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런 식으로 뭔가를 말하는 깅코 씨를 나는 처음 보았다.

깅코 할머니는 방황하는 치즈를 보채지도 않고, 별다른 조언을 건네지도 않은 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다 가끔 불안의 극치를 달릴 때 묵직한 한 마디를 툭 내뱉곤 하는데, 이는 몇십 마디 응원보다도 더 훅 마음속에 들어온다. 깅코가 치즈에게 던진 말을 나는 ‘지금까지 네가 꿋꿋이 잘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너는 너대로 살면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리고 그 말은 어떤 길을 가더라도 나는 잘 버틸 수 있으리라는 묘한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 세상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과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은 결국 같은 세상이니까.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안에서 삭이던 두려움을 잠재우고 용기를 냈다. 만약에 치즈와 나처럼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불안하고 겁이 나는 독자라면 『혼자 있기 좋은 날』을 꼭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치즈와 깅코의 일상에 함께 스며들어 삶을 담담하게 버티는 법을 터득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