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 2017

아포칼립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ditor. 한진우(메디치미디어 편집자)

메디치미디어 편집부에서 근무 중.
취미는 사무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청와대 지붕을 보며 불순한 상상을 하는 것.
국정원이 싫어할 책을 출간했으나 몇십 권 사가고는 절대시계 하나 보내오지 않아 좌절 중이다.

『재난시대 생존법』 우승엽 지음, 들녘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맥스 브룩스 지음, 황금가지

병신년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특검 수사 개시와 함께 화려하게 저물었다. 영화 <내부자들>을 ‘뽀로로’ 수준으로 끌어내린 이 사건은 시민이 대통령을 끌어내린 역사적 혁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청문회는 일종의 막간극에 가까웠다. 부역자들이 위증을 일삼다가 네티즌의 제보에 응징당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돌이켜보면 이번 정부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는 많기도 했고 규모도 컸다. 실로 이제 핵발전소 폭발이나 소행성 충돌 정도가 아니면 흥미 유발이 힘든지, 영화관들이 때아닌 불황에 신음하기도 했다. 다만 국가재난 수준의 참사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고 그게 나나 당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게 불행의 단서다. 이번 정부의 능력을 보건대 비행기나 배가 사고를 당하거나, 백두산 같은 휴화산이 분화하거나, 이웃 국가가 침략해오거나, 핵미사일이 떨어질 경우 우리의 생존율은 한없이 ‘0’에 수렴할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고 싶다면, 일단 봐둬야 할 책이 있다. 바로 재난 대비라는 아이템을 국내 실정에 맞게 집필한 최초의 책, 『재난시대 생존법』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재난 관련 서적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있다. 바로 당신이 거대한 재난 한가운데 떨어졌다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능한 북한 지도부가 한반도 북부에서 핵실험을 하다가 계산착오로 백두산을 건드려서 저 흉포한 백두산이 마침내 깨어났다고 가정해보자. 불행하게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가재난 컨트롤 타워를 치워버리고 관계자들을 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각처로 분산시켜버린 이후로, 한국 정부는 대재난에 대처할 매뉴얼이 없다. 현 정부의 첫 대응이 “우리 국토는 안전하니 국민 여러분은 걱정 말고 생업에 종사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헛소리 직후 급히 부산으로 도망가는 것이라면, 이제 우리 몸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이때 재난 분야 ‘삐뽀삐뽀119’가 있으니 『재난시대 생존법』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자동차 생존법과 연료 구하기 등 이동 준비를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일단 비상식량·식수 정화·비상통신·구축·응급처치 부분을 읽어두자. 이것만으로도 당신이 생존할 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실제로 국가 기간시설이 붕괴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고난은 식수 부족이다. 빗물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화산 관련 재난은 빗물이 재와 섞여 먹을 수 없다. 더욱이 핵에 관련된 사고 후 내리는 빗물을 먹었다가는 내부 피폭을 당한다.
또 하나, 반드시 조심해야 할 대상이 있으니 바로 인간이다. 재난이 무정부 상태로 이어질 경우, 선량한 시민이 폭도로 돌변하는 건 시간문제다. 연인이나 가족을 지키고 싶다면 비상시 호신 무기 및 대처법과 도시생존법을 주목하자.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을 털다가 옆집 아저씨와 시비가 붙거나, 아파트에서 침입자들을 물리쳐야 할 때 요긴할 것이다.
혹시 『재난시대 생존법』의 묵직한 무게와 두께 때문에 흥미가 안 간다면,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같은 다소 허황하더라도 재미있는 책으로 생존 공부를 해보자. 이 책은 영화 <월드워Z>의 원작자로 유명한 저자 맥스 브룩스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일종의 페이크 실용서라 할 수 있다. 물론 좀비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란 영화나 게임 속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니, 천만에 하나라도 유사한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전 지식이 없으면 나나 당신이나 잘해봐야 <월드워Z>의 좀비떼 중 하나가 될 운명을 피하기 힘들다.
좀비가 창궐했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부분은 바로 ‘총기’ 지만, 진짜로 따라 했다가는 불법 총기 소지죄로 거하게 벌금을 내야 할 위험이 농후하니 아쉬운 대로 아파트나 개인 주택에서 좀비를 퇴치하는 방법을 익혀보자. 24시간 경비하기, 눈에 띄지 않게 생활하기, 유사시 탈출 경로 마련하기 등은 피와 살에 굶주린 좀비뿐 아니라 물, 식량, 거처를 강탈하려는 외부 인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다.
정부는 병신년을 그대로 보내기 아쉬웠는지 조류인플루엔자에 문을 활짝 열어줘 2,200만 마리가 넘는 닭이 살처분됐다. 국민을 개, 돼지로 아는 분들이 위에 버티고 계시니, 닭에게 닥친 재난이 우리에게 닥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 생명은 우리가 지키자. 바야흐로 목숨마저도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든 한국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