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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7

인간이란 무엇인가

Editor. 이수진

근사한 문장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주섬주섬 적기 시작한다. 가장 오래도록 좋아하고 있는 문장은 몽테뉴의 말,
“나의 일과, 기술 그것은 살아가는 일이다.” 살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로렌스 앤서니 지음
뜨인돌

시간이 많았던 그 언젠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지금 당장 답을 내려야만 할 것 같은 비장한 자세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아마도 주변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있었던 듯싶다. 곤란하고 난처한 마음으로 철학과 심리학 관련 서적을 읽기도 했고 인간사의 곡절을 다룬 영화를 되는 대로 찾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정답을 얻었느냐고 물어본다면 여전히 명확한 답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내가 겨우 내뱉을 수 있는 한마디는, 인간이란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기보단 인정해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 정도다. 이해의 잣대를 들이밀기에는 인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긴 세월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럭저럭 시간을 건너오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종종 함께 지내야 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지난 몇 년은 유난히 그랬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편이지만, 최근 몇 년간은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고는 했다. 신문과 뉴스를 볼 때면 화가 나는 날들이 자주 찾아왔고 눈물이 뚝 떨어지는 생경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갓 스물이 넘은 한 청년의 지하철 사고 소식엔 종일 마음 한구석이 훅 내려앉은 것 같았다. 가혹한 세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누구든 다치지 말고 죽지 않고 살아만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겨우 해내며 몇 년을 지나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환경보호운동가 로렌스 앤서니도 그랬을까.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소식을 듣고 바그다드 동물원의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쿠웨이트로 날아가 결국에는 이라크에 들어간, 로렌스 앤서니.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을 때 폭탄으로 실명되고 끝내 총에 맞아 사망한 카불 동물원의 사자 마르잔의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로렌스 앤서니는 마르잔의 사진을 보며 인간이 지닌 잔혹함에 잊을 수 없는 끔찍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원칙적으로 동물원 자체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엄격히 말해 동물원은 동물에게 감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로렌스 앤서니가 포악한 전쟁이 진행 중인 바그다드에 들어간 이유는 동물원을 구하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로렌스 앤서니는 바그다드에 들어가 처참한 모습으로 아사 직전에 놓인 동물들과 폐허가 된 동물원, 동물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생계를 차례차례 구한다. 자본이 있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백인 남성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구분 이전에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혼돈의 한복판으로 들어간 인간의 용기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지닌 힘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해 누군가의 생존을 무의식적으로 짓누를 수도 있고, 이 상황이 어떻게 나쁜 건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질 수도 있는 존재인 인간이란 정말 무엇일까.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는 어떻게 보면 한 인물의 영웅적인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지만, 내게는 소중한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해 혼돈 한가운데로 뛰어들 수 있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바그다드 동물원의 동물들을 살리는 과정 하나하나가 영웅적이기보다는 협력적이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352쪽의 책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그 과정 하나하나가 인간 마음이 도달할 수 있는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바그다드 동물원에서 우리가 치렀던 전투가 사막 위에 하나의 선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선이 비록 작고 희미해 잘 보이지 않더라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