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 2017

무력한 사회의 사회학

Editor. 박소정

불안한 표정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고양이를 보면 일단 ‘야옹’ 하고 인사부터 하는 고양이 덕후.
귀가 발달한 편이라 소음을 피하기 위해 항상 BGM을 틀어놓는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지음
이마

혼자의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오히려 더 잦아졌다. 직접적으로 지인의 초대를 받아 집에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간접적으로 블로그, 개인 방송,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타인의 일상을 접한다. 무엇을 먹고, 어떤 물건을 쓰고, 어디를 가는지 표면적인 생활상 말고도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못했던 개개인의 속사정도 들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텔레비전 토크쇼만 봐도 유명한 연예인들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부터 현재의 관심사, 연애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끔 대중의 관음증을 부추기는 진행자의 노골적인 질문을 들을 때면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지만, 어쨌든 토크쇼에 나오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는 절로 귀를 기울이게 하고, 한바탕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타인의 생활에 웬 오지랖인가’ 또는 ‘결국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라고 한숨을 내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회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어 있는 사회학은 말 그대로 인간을 대상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거시적으로 사회 계층과 이동성, 법률, 근대와 현대 등을 연구하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우리의 의식주와 더불어 우리가 평소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지 등 그 범위를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범위가 넓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학은 왜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결국 “그렇다면 삶은 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한 사회학자가 쓴 이 책은 이전에 접해온 사회학책과는 거리가 멀다. 기존 사회학책에서 관찰자이자 냉철한 학술자로서 단정적 결론을 내는 사회학자를 만났다면, 이 책에서는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조금은 엉뚱한 시선으로 우리 삶에 기웃거리는 학자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 재즈와 동네 산책을 즐기는 평범한 중년인 그는 평소 자신이 사는 오사카 번화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하지만 학자로서 조사할 때는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책은 저자가 사회에서 소수자로 불리는 이부터 안정된 삶을 확보한 공무원, 대기업 직원 등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하며 겪은 경험과 단상이 기록되어 있다. 다양한 사람의 삶을 한 단어로 묶을 수 없듯, 그의 에세이도 하나의 주제로 정리할 수는 없다. 다만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시시콜콜하면서 재미있는 답변을 들려준다.
그중 그가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기묘하고도 멋진 블로그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고령의 ‘복장 도착자’가 주인인 이 블로그는 여느 블로그와 다름없이 날씨와 애완동물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사, 사회, 연예인 뉴스 등 일반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주인의 의견이라고 해봤자 뉴스에 대한 단상 정도가 덧붙여 있다. 단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자극적이지 않다. 끔찍한 아동학대와 같은 소식에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정도다. 이렇게 평범한 블로그에 할아버지가 명소를 배경으로 여고생이나 여사원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올려져 있다. 보통 복장 도착자라면 자신의 지향하는 바에 관한 설명이 있게 마련인데 ‘복장 도착’과 관련한 용어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한때 이 블로그가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며 일부에게 조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선입관을 깨트린 계기를 주기도 했다. 소수자에게 수많은 딱지를 붙이는 오염된 세상에서 이 블로그는 딱지로부터 자유로운 청정구역과 다름없다. 블로그의 주인은 이를 만들고 4년 넘게 운영해오며 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글쓴이가 말한 대로 이 블로그는 ‘하나의 유토피아를 달성하려는 시도’로 기묘하고 또 멋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왜 사회학인가” 아니 “왜 사는가” 묻는다. 즉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고대 철학자부터 오늘날 사회학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물어왔고, 또 대답해왔다. 신의 뜻에서부터 환경, 개인의 의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과 철학을 넘나드는 답과 해석을 살펴보면 우리가 찾던 답은 점점 미궁 속으로 사라져가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깊지만 어렵지 않게 우리네 삶을 통해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별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의지를 가진 이로부터, 평범한 삶이지만 특별하게 만들어가는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