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 2018

신년 고해성사

Editor. 김지영

정도를 막론하면 일주일 중 나흘은 술과 함께한다.
술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행복해진다.
가끔 내 주업이 에디터인지 프로알코올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일하는 문장들』 백우진 지음
whalebooks

새해를 맞았으니 올해 첫 원고는 고해성사로 시작해본다. ‘좋은 글이란?’이라는 고민을 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첫 동아리 활동을 교지편집부 ‘씨밀레’로 시작했고, 고등학교에서도 ‘느티나무’라는 교지편집부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2년에 한 번 나오는 교지를 제작하며 찬찬히 내 길을 닦아왔지만, 대학마저 문예창작과를 다니니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이 앞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밥벌이나 하면 다행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위안으로 삼았고,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잡지계에 발을 내디뎠다. 입사하고 몇 달은 첫 사회생활이라는 심리적 압박 탓에 그저 열심히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감을 앞두고 밀린 원고를 하나씩 완성해 가던 중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정말 불현듯 머릿속이 온통 질문으로 가득 찼다.
‘독자가 내 글을 좋아해 줄까’ ‘내 전임자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는 내 글을 읽으며 지루해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 나 스스로가 만족하는 글을 쓰고 있는 건가’ 질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답을 찾을 수 없자 괴로움만 커졌다. 끝까지 답을 찾진 못했지만, 꽤 오랜 시간 내 안에 남아있던 질문을 하나씩 지워갔다. 이제 딱 하나만 남았다. ‘좋은 글이란?’ 이 질문을 1년간 앓았다. 덕분에 그간 부단히 노력했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 질문만은 끝까지 가져갈 만하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생각이라면.
글로 밥 벌어 먹고사는 나도 이토록 글이 어려운데, 다른 이들은 글을 쓰는 게 오죽 힘들까. 섣부른 일반화는 아니고, 적어도 내 지인들이 내가 글 쓰는 사람이랍시고 내 앞에서 토로하는 일이 많아 그렇다. 주어와 서술어 알맞게 배치하기, 적절한 근거를 내세우며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등 글을 쓸 때 주의할 점이 무척 많다.
무엇이든 기초가 중요하다. 간과할 수 있는 기초를 다시 상기하고 잘못된 습관이 굳어지기 전에 바로 잡을 길잡이가 필요하다. 글쓰기 기초를 알려주는 책을 읽는 게 낫지 않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 답한다. 문장이란 무엇인가, 글이란 무엇인가처럼 관념적인 이야기를 하는 책은 실전과 거리가 멀다. 키보드에 손을 올려놨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책이 진짜 글쓰기 교본이다. 그간 책을 좋아하고, 글을 잘 쓰고 싶었던 내가 얼마나 많은 교본을 읽어봤겠는가. 출간된 교본은 대부분 읽어봤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일하는 문장들』을 굳이 뽑은 이유는, 이제 막 자기소개서라는 굴레에서 빠져나왔지만 직장에 들어가서도 보고서를 써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가장 대중적인 글쓰기는 보고서이지 않을까. 만약 당신이 ‘보고서쟁이’가 아닌 ‘보고서장이’이고 싶다면 이 책에서 알려주는 방법을 실전에 사용해보자. 중간중간 인용한 글을 수정해 적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았으니 직접 펜을 들고 고쳐보는 것도 좋다.
‘당신이 사장이라면 어떤 보고서에 결재하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직장인에게 끝나지 않는 숙제인 보고서를 어떤 방식으로 쓰는 게 좋은지부터 단어 선택과 숫자 정리까지 친절히 알려준다. 하루 결재 서류가 10건이라면 1주일에 50, 60건을 결재해야 하는 사장은 업무 시간의 절반을 보고서 읽는 데에 할애한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맞춤법, 띄어쓰기가 엉망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혀 파악이 안 된다면 과연 읽고 싶을까? 읽고 싶지 않으니 결재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글이 마찬가지지만 구조가 탄탄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 즉 핵심을 요약해 개요에 확연히 드러나도록 두괄식으로 작성해야 한다. 또, 모든 글의 기초라 하는 첫 문장과 제목을 잘 짓는 것도 중요하다. 제목은 독자를 글로 끌어들이는 여리꾼 역할을 하는 동시에 글의 메시지를 압축함으로써 독자가 감을 잡고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첫 문장도 마찬가지다. 시작이 반이다. 보고서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읽는 사람을 고려한 글쓰기이어야 한다.
글은 우리가 살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앞으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 보다 대중적으로 나아가 앞으로 보고서를 써야 하는 사람, 보고서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하는 문장들』을 한 번쯤 읽어보길 바란다. 새해부터 무슨 일 얘기를 하냐며 ‘혼꾸녕’을 내도 좋다. 핑계를 대자면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리고 이 직업을 그저 글이 좋아 시작한 지라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걸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