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 2018

대국민 ‘사놓고 안 읽은 책’ 1위는?

Editor. 이희조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비트코인으로 앉아서 돈 버는 사람들 얘기에 아노미를 겪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지음
김영사

사놓고 책장에 꽂아둔 채 펼쳐보지 않은 책이 얼마나 될까? 아니, 그중 읽은 책이 읽지 않은 책보다 많긴 할까? 연말을 맞아 대청소 겸 책장을 정리하는데 책들이 자가증식을 했는지 늘기만 늘었다. 아마 속으로 찔린 사람 여럿 있을 것이다. 혹해서 샀는데 안 읽은 적, 흔하디흔한 일이니까.
대국민 ‘사놓고 안 읽은 책’ 대회를 연다면 어떤 책이 후보에 오를까? 예상컨대,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하 『정의』)와 비슷한 제목의 유시민 작가 책 『국가란 무엇인가』(이하 『국가』)가 한자리하지 않을까 싶다. 『정의』는 무려 130만 부 넘게 판매돼 2010년 한국을 뜨겁게 달군 책이었고, 『국가』도 탄핵,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인기를 끌더니 작년에 새로 개정되어 나와 여전한 돌풍 속에서 인문학 베스트셀러 순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 책들을 사놓고 안 읽은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나다. 『정의』는 2010년에 구매해 첫 번째 장만 읽은 후 책장에 고이 모셔놓았고 『국가』는 몇 해 전에 구매하고 단 한 장도 펼쳐보지 않았다. 내가 읽지 않았다 하여 왜 남들도 안 읽었을 거로 생각하냐고? 여기에는 나름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제목에 있다. 내가 이 책들을 산 것은 ‘베스트셀러라서’인 것도 있지만, ‘00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제목은 참 이 책을 보면 나도 정의와 국가에 대해서 떠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단번에 해결해줄 것이라고 대놓고 홍보하는 마케팅까지 더해지면 허영심 많은 나 같은 독자는 알면서도 넘어간다. 일종의 인테리어 소품인 셈인데, 보통 이런 허영심 많은 독자는 책을 꽂아만 둔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을 읽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그렇다. 나는 2017년을 보내기 전 정말 엄청난 의지를 불태워 두 책을 모두 독파하는 데 성공했다. 읽기 전, 이 책이 대중서로 많이 팔렸으니 내용은 그렇게 전문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다소 무시 아닌 무시를 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의』 『국가』 둘 다 ‘00란 무엇인가’라는 제목과는 달리 ‘00를 둘러싼 사상의 역사는 무엇인가’를 다룬 일종의 전문 역사서였다.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생각과 그 계보를 한 권의 책에 밀도 있게 담은 것이다. 그래서 한장 한장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기 위해 엄청난 지적 노동이 필요했다. ‘이걸 대한민국의 몇 %가 독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마디로 제목에 속아 샀다가 도망가기 좋은 책이 바로 이 두 권이다. 실제로 『정의란 무엇인가』의 영문 제목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로 번역해보자면 ‘정의: 무엇을 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정도이다. 일본판은 제목이 『これからの「正義」の話をしよう』인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앞으로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이다. 정의에 관해 얘기해보겠다는 거지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여러 해 펼쳐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제목에 낚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정말 자신 있게 예상컨대, 이 책들은 읽은 사람보다 사놓고 읽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으리라. 읽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꼭 읽어보시라. 고단한 지적 노동 끝에 얻는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