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16

뻔하면 어때? 내 로망

Editor. 이수언

『카페 프란스』 정지용 지음
아티초크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라는 오은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는 상상 속에 사랑하는 분위기를 하나씩 갖고 있다. 즐겁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내 상상 속 배경에는 항상 책이 있다. 그 모습은 계절마다 달라진다. 초가을이라면 모름지기 나무에 기댄 채 시를 읽어야 한다는 게 그 뻔한 예다.
초가을을 맞이하여 주머니에서 꺼낸 책은 정지용의 『카페 프란스』다. 가로 11cm에 세로 18cm로 바지 뒷주머니에 반절 정도 들어가는 크기다. 귀엽고 빈티지한 감성이 더해진 표지는 무려 세 가지 안이 있는데, 주머니 사이로 살짝 튀어나오는 표지 그림을 보면 모던뽀이 또는 모던껄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책을 들고 공원으로 가 편안한 너비를 가진 나무와 근처에 동물들이 남긴 배설 흔적이 없는지 살핀 뒤, 기댈 자리를 잡는다.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어 책을 펼치는데 ‘바다 1’이 보인다. “오. 오. 오. 오. 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 오. 오. 오. 오. 오. 연달아서 몰려온다 / (…)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시를 읽다 보니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공원에서 바다를 느낄 수 있다니….
이건 거짓말이다.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흔들고 뺨을 때려보는데 파도 거품이 발을 적신다. 흠칫 놀라 발을 빼려다가 비로소 내가 로망의 늪에 빠진 것을 알게 됐다. “그래, 나는 로망의 노예야”라고 인정하니 뻔한 이곳, 나를 둘러싼 공기가 달리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