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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6

나는 페미니스트와 결혼하기로 했다

Editor. 한진우(메디치미디어 편집자)

취미는 사무실에서 보이는 청와대 지붕을 보며, 국정원에 끌려가기 딱 좋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
신입사원 김 군에게 강탈당한 (주)메디치미디어 제일의 ‘미친 자’ 칭호 탈환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창비

어느 시골 학교에서 벌어진 기묘한 성차별
초등학생 때 학급 반장선거를 하면 반장은 언제나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모범적인 ‘남학생’이, 부반장은 공부를 잘하고 상냥한 ‘여학생’이 뽑혔다. 더 기묘한 경험은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여학생이 학생회장에 당선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위와 같은 경험은 일상에서 내가 그때그때 알아차리지 못할 뿐,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자친구와 옷을 사러 가면 직원이 “남자친구분이 오늘 큰돈을 쓰시네요”라고 말한다. 큰돈도 아닐뿐더러 그 옷은 여자친구가 온종일 기사를 써서 번 돈으로 사는 것이다. 심지어 발레 파킹을 한 후 주차 직원은 자동차 키를 꼭 내게 준다. 이 차는 내 차도 아니고, 나는 조수석에서 편히 왔다. 한 번은 캠퍼스 커플이었던 동기가 결혼하게 되어 웨딩드레스를 봐주러 간 적이 있는데, 드레스룸은 마치 소극장과도 같았다. 남성이 편안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기다리면 무대 커튼이 열리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나타났다. 그러면 업체 직원들이 묘하게 ‘품평회’ 분위기를 조장했다.
왜 우리 남성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할까?
어떤 주제와 소재를 다루던 양쪽에게 욕을 먹을 게 빤했지만 나는 오늘 다룰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은 후 용기를 냈다. 왜냐하면, 내가 30년 남짓 인생을 살아오면서 성염색체가 XY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큰 특권을 누리고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젠더와 사고가 왜곡된 세상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성으로서 여성과 여성의 인권에 대해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많은 한국 남성은 앞으로 자신들을 위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2
차 성징이 시작되기 전부터 우리에게 강요된 성 역할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인형을 좋아하면 안 되고, 늘 씩씩해야 하며,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남성 따위는 개나 줘야 한다는 것 말이다.
페미니스트랑 결혼하겠다니, 제정신이니?
이 책의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자신을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고백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남편이 없어 불행하고, 남자를 미워하며, 비(非)아프리카적”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나이지리아만의 문제일까? 힐러리 클린턴이 미 대선 후보로 지명된 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 여자친구는 한국의 낙후된 여성 인권과 유리천장 효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 후 나는 전화로 친구에게서 “심한 말인 것 같아 미안하지만, 걔랑 결혼할 생각일랑 접어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 조언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고서는 “음, 미안한데, 그게 파혼 사유가 된다면 나도 결혼할 자격이 없겠네”라고 에둘러 말하고 끊었다. 왜냐하면, 나는 비록 페미니즘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지만, 여성 인권이 보장되고 유리천장이 깨져야 나 같은 남성도 편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왕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고 부당해고를 당한 성우를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메갈리아는 일베와 동일한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만약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되고, 우리의 편견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저자의 모국 나이지리아와 한국은 다를 게 없는 곳이 된다. 아프리카와 나이지리아를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한국과 한국 남성들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은 당신 지갑에 관심이 없다, 남성들이여
불행히도 아직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스포츠 등 거의 모든 게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런 세상을 바꾸려면 기득권층을 쥐고 있는 남성부터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처럼 얕고 쉬우며 남성 우위의 껍질을 깨는 책이 절실하다.
만약 이 칼럼을 읽고 심기가 불편한 남성들이 있다면 같은 남성으로서 유감의 뜻을 전한다. 다만 당신들의 그 불편함을, 여성은 평생 언제 어디서든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