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18

남자친구와 같이 읽을 책이 없냐고요?

Editor. 지은경

농사지을 재능은 없지만
언젠가는 깨끗하고 올바른 농사에
작은 기여나마 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혁명은 장바구니에서』 마쓰타로 사쿠라 지음
눌민 출판사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나는 취재를 위해 충남 홍성 한 자연재배농장의 조동지 쌀 모내기 현장에 사진작가와 방문한 적 있다. 이른 아침부터 약 30명의 사람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논에 1열로 앉아 모내기를 시작했다. 그리 크지 않은 자그마한 논이었지만 기계 없이 인간의 손으로 하나하나 모종을 심는 작업이었기에 정오가 되어도 겨우 20%의 논이 채워졌을 뿐이었다. 점심때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행인이 갑자기 멈춰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거죠? 아니, 그렇잖아요. 기계로 모내기하면 1시간도 안 되어 모두 끝날 일을 왜 이렇게 여러 사람이 힘들여가며 오랜 시간 고생하고 있느냐는 말이에요.”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농사에도 관행농, 유기농 등 다양한 농사 종류가 있잖아요. 자연재배농법은 기계도 사용하지 않고 땅을 갈지 않으니 자연히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겠죠.”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혼자만 깨끗한 척 유별난 척하면 다른 농민들을 배신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기술이 왜 발달하겠어요? 새마을운동이 이룩한 신화를 지금 당신들이 다시 뒷걸음치게 하고 있잖아요!” 그때 나는 깨달았다. 상당수의 농민이 새롭게 대두되는 자연농법에 대해 알고 있으며, 또 이에 굉장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현재 우리는 농업 기술의 과도기적 변화 한가운데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담으며 미래로 나아갈 방법을 명쾌하게 알려주는 책을 한 권 만나게 되니 머릿속이 훨씬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서 말하는 우리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점점 안전한 먹거리를 찾지만 믿을 수 있고 깨끗한 농산물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또 자연의 섭리로 이루어진 못생긴 토마토나 벌레 먹은 과일들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이런 아이러니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에는 환경 오염, 중간 유통 과정에서의 원산지 속이기, 기업의 이윤 추구와 쏟아지는 미디어 세례 속 신뢰성의 결여 등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농약을 사용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모두 농약과 비료 없이는 농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흔히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일 뿐 자연재배농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며 그 자세한 예시를 들고 있다. 또 유기농이라 해도 다 같은 유기농이 아님을, 농업 종사자들의 논리 또한 모두 제각각인지라 유기농이라는 단어의 마력에 단순하게 빠지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함을 말한다. 동물복지에 대한 의견 또한 너무도 다르다. 동물을 자식처럼 키운다는 농가(키운 동물을 결국 죽여 돈을 취하는 것이 자식처럼 여긴다는 것이라면 그 의미에는 많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물은 좁은 사육장에서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평생을 살다가 죽임을 당한다. 따라서 ‘동물복지’를 써 붙인 계란이라 하더라도 ‘방사유정란’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이는 진정한 복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농업은 곧 생명이다. 생명을 위하는 일이고 나아가서는 환경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는 비료와 농약은 우리의 식탁뿐 아니라 이 세상의 토양을 오염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움직임에 동참해야 할까? 책은 먼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눈을 기를 것을 강조하며 우리가 쉽게 오류에 빠질 수 있는 수많은 단어와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다. 또, 한번 알게 된 지식을 입소문을 통해 주변에 알려 많은 사람이 깨끗한 먹거리를 선호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올바르고 깨끗하게 재배된 농산물들이 적극적인 소비 활동을 통해 시장 안에서 설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고, 결국에는 농산물 가격도 낮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먹거리의 선택은 사람을 살리고 땅을 살리며 지역을 살린다. 새로운 경제와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은 농사를 통해 새로운 커뮤니티를 생성하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엮는 동시에 깨끗한 재료를 엄선해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과 가게들을 함께 소개한다. 10개의 채소를 땅에 심어 10개 모두 수확하는 것이 관행농이라고 한다면, 자연재배농은 10개 중 3개는 벌레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 그리고 토양과 나누고 7개만 수확해도 괜찮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책은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믿던 것을 가능하다고, 또 그대로 믿었던 것이 사실은 거짓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가끔 화도 나고 암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속 시원하게 현실을 증거로 내밀며 새로운 농사의 기준과 희망을 제시하는 책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