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6

긱geek의 시대

Editor. 유대란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리처드 파인만 지음
승산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공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성을 발견했는데, 흰 피부에 긴 생머리를 하고 ‘여자라서 행복해요’라고 외치는 듯한 치마를 입은 이상형이었단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날이라 유난히 설레었고, 행여 자신이 아는 책이라면 그걸 핑계 삼아 말을 걸어보려고 다가갔다. 그는 왠지 시집이나 에세이집일 거로 생각했단다. 여기까지 듣고 취향이 참 ‘클리셰’다 싶어서 우리는 대뜸 끼어들었다. “혹시 그 여자 이름이 지연, 소연 머 이런 거든?” “그 책은 버지니아 울프?” “땡!” 우리의 예상은 모두 틀렸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은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였다고. 우리의 머릿속도 ‘댕’ 하고 울렸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서 더 섹시했던 거야!” 우리도 격하게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런 사람 정말 섹시하겠다.”
그녀에 대한 그와 우리의 반응에서 몇 가지를 추정할 수 있다. 과학책을 읽는 것이 섹시한 시대가 왔다는 것, 감성적인 분위기를 모락모락 풍기는 사람이 과학책을 읽는 그런 반전은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긴 생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여자는 시집을 읽을 거라는 편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그는 그 반전에 이끌려 난생처음으로, 처음 보는 이성에게 말을 걸었고, 결말은 그렇고 그랬으나 몇 주간의 설레는 연애를 했다. 두 사람을 이어준 건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리처드 파인만이 자신의 강의를 추리고 재편집한 책이다. 생머리를 한 그녀는 비록 물리학도는 아니었지만, 진자운동의 변형된 에너지를 수식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픈 매력적인 ‘긱’임에는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과학책을 펼쳐보자. 당신이 어느 파티에 가서, 새로 뽑은 자동차나 여기저기서 귀동냥한 문학적 지식을 뽐내기보다, 매력적인 누군가의 손에 들린 칵테일 잔의 재질이나 형태를 보고 열전도율이나 보냉 효과를 들어 술잔 속 얼음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말해줄 수 있다면, 또는 조니 미첼이 40년 전에 “우리는 모두 스타더스트stardust”라고 노래했을 때 그 시적인 가사가 과학적으로도 얼마나 타당한 것이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다면 당신의 호감도는 배가될지도 모른다. ‘긱’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