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6

그들이 남긴 이야기

Editor. 박소정

떠난 자는 아무 말이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작가들이 남긴 이야기들은 더욱 그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 2016년의 동이 트고 얼마 되지 않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다. 어두운 시대의 등불이 되어주었던 신영복 교수부터, 시대의 지성 움베르트 에코, 『앵무새 죽이기』로 노벨상을 받은 하퍼 리까지. 서점가에서는 타계한 작가들의 작품이 재조명되며 사랑을 받고 있다. 먼저 가버린 작가들에 대한 아쉬움도 잠시, 나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나의 정신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 작가의 작품들이떠올랐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희망보다는 좌절에 무게가 더해질수록 이들이 생각나곤 했다. 다른 시대를 겪었지만 같은 것을느낀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릿해온다. 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이야기를 다시 한 번찬찬히 돌이켜보았다.

『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지음
마음산책

익숙한 곳으로의 여행을 선호하고, 서점에서는 늘 가던 코너만 가고, 새로 나온 노래들이 하나같이 예전에 나온 곡만 못하다고 느낄 때마다 세상에 대해 거친 불만을 털어놓았다. ‘왜 다들 발전이 없는 거냐고’.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같았다.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점점 힘에 부쳐 피하게 될 때 나 또한 늙어가는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때 꺼내 든 책이 수전 손택의 인터뷰집이다. 그녀는 이른 나이에 명문대를 들어가고, 남들이 대학을 졸업할 나이에 하버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아 미국의 지성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수식어는 그녀의 강인함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이 책은 수전 손택이 몇 년간 암투병생활을 끝낸 후 『롤링스톤』의 조너선 콧과 1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를 담았다. 그녀가 쓴 글과 달리 그녀의 말이 고스란히 실린 인터뷰집은 실제로 그녀의 당찬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해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전 손택에게 사랑과 욕망 그리고 사유하는 것은 같은 것이었다. 암에 걸리자 그녀는 습관적으로 암이란 질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병자들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하고 고민하며 자신이 겪는 병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늘 고찰하는 버릇에 대해 지나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깊게 사유하지 않으면 결국 진부한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또한 그녀는 철학에 범위가 없음을 강조한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사랑에 뭔지 파고들기 시작하듯이, 모두가 사고하고 철학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도 유명했는데,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흥밋거리이자, 휴식 그리고 작은 자살로 규정했다. 늘 남을 책망하기보다 스스로 책임지길 원하는 강한 그녀도 가끔 세상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부조리할 때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그녀에게 책은 현실의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하는 작은 우주선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스스로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좌절감이 든다면, 이 책은 그 절망에서 빠져나와 정말 필요한 생각은 무엇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건설적인 제안을 던져줄 것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트 에코 지음
열린책들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임과 동시에 뛰어난 소설가였던 움베르트 에코의 타계 소식은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다. 20세기의 대표 지성인인 그는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해 미학, 기호학, 대중문화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참고로 이 책은 지난 1992년에 출간된 『디아리오 미니모 제2권』과 1997년에 출간된 『연어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정리한 책이다. 책에는 그만이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참신하면서 흥미로운 글들이 실려 있다. 기내식을 먹는 방법, 이색적인 휴가를 보내는 방법,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철학자 및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의 예상 답안 등 여러 갈래의 실용 처세법에 관한 것과 기호학과 논리에 관한 것 그리고 그의 고향 알렉산드리아에 관한 추억까지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논조로 다루고 있다.
그는 ‘택시 운전사를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택시에 오르는 순간부터 마주하는 문제, 즉 택시 운전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찰한다. 보통의 택시 운전사들은 종일 다른 운전자와 싸우며, 전쟁터 같은 도로를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할 예민함을 갖고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는 이탈리아의 택시 운전사를 부정적 의견을 마구 토로하는 사람, 긴장된 표정으로 운전에만 집중하는 사람, 다른 승객들을 태우고 가다가 겪은 일을 새로 탑승한 승객에게 털어놓으면서 수다를 떠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비단 이 유형은 이탈리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상황에 마주칠 때 그저 장단에 맞춰주는 수밖에 더 있느냐고 허심탄회하게 말한다. 또한 그의 한 제자가 죽음에 대비하는 방법을 묻자, 세상의 모든 이들이 바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 다만, 60억 넘는 세계 인구가 모두 바보라는 확신은 오랜 시간 동안 땀도 흘리고 세상의 세태를 세심히 살피며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존경받고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여겼던 최후의 1인 역시 바보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지혜를 찾고 담담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전한다. 그의 타계 소식이 여전히 낯설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지금, 그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지음
알마

“무엇보다도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2015.02.19 『뉴욕타임스』 특별 기고문 중
올리버 색스가 죽음을 6개월 앞두고 투병 중에 쓴 글이다.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을 상대로 지녀온 담대한 마음과 열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유능한 정신과 의사인 동시에 소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환각』 등으로 유명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펴낸 이 책은 그가 방황하던 젊은 시절부터, 동성애자로서의 힘든 연애, 과학자로서 발견의 기쁨, 암 투병 생활을 하며 느낀 고통 등 비범한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기록한 자서전이다.
그는 열여덟 살 무렵 어머니께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어머니는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비난하며 그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긴다. 의대에 진학하여 훌륭한 의사의 삶을 살면서도, 그는 늘 무언가에 목말라했다. 불타오르는 연애를 하기도 했고, 애틋한 짝사랑으로 끝나버리는 애통한 사랑을 하면서 그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한때 약물에 중독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삶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넘치는 열정과 호기심을 환자와 글쓰기 그리고 자신의 삶에 받치며 누구보다 멋진 인생을 살았다. 그는 일할 때면 따뜻한 올리버 박사로 환자의 성격은 물론 관심사, 가족, 인생사 모든 것을 공유하며 그들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일과가 끝난 뒤면 동호회에서 ‘울프’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거친 늑대처럼 모터사이클을 타고 밤거리를 누비곤 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그는 암과 극심한 신경통으로 앉을 수 없는 상태에서도 책상 위에 사전을 쌓아 올려 자신의 키에 맞춘 뒤 노트에 그가 느낀 고통, 감정 등을 기록했다. 또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75세의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기도 했으며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 여생을 즐겼다. 동화에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리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오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올리버 색스의 인생이야말로 동화, 아니 동화 그 이상의 멋진 현실의 삶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