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6

왜 심심한 영화를 좋아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Editor. 박소정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문학동네

딱히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어 심심한 기운이 엄습해올 때는 일본 영화가 딱이다.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우울할 땐 더 우울한 노래를, 심심할 땐 더 심심한 영화를 보는 것이 나만의 해소법이다. 영화는 주로 혼자 집에서 다운을 받아서 보는데, 영화관에서 상영을 잘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영해도 손뼉 치며 따라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같이 관람해도 영 반응이 아니다. ‘심심하다’는 평은 양반에 속하고, ‘기운이 빠진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등 한결같이 허무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심심한 맛이지만 계속 먹게 되는 강냉이 같은 매력이 있다고 말하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될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왜 굳이 일본 영화야?”라고 줄기차게 묻는 이들에게 이 책은 일본 영화가 무엇인지,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묘한 재미는 무엇인지 친절히 안내해줄 것이다.
이 책은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얻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쓴 에세이집이다. 그의 영화처럼 자기를 표현하는 대신 소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작품 이야기부터 어린 날의 추억, 일상의 풍경, 평소 고찰했던 것들에 대한 꾸밈없는 기록들로 우리와 대화한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쓸데없는 것도 필요한 거야. 모두 의미 있는 것만 있다고 쳐봐. 숨 막혀서 못 살아.” 자극이 넘쳐나는 혼돈의 시대에 일본 영화가 가진 묘미가 담겨 있는 대사다. 또한 그의 영화에서는 권선징악, 선악 구도와 같은 화학조미료 같은 코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감독은 신도 판사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악인을 설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알기 쉬워질지 모르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까지 끌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따라서 그의 영화에는 만능 해결사인 영웅 대신 우리와 같은 사람, 그리고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 등장한다. 그게 삶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소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