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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21

이 무례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글.전지윤

박학다식을 추구했지만 잡학다식이 되어가는 중. 도서관의 장서를 다 읽고 싶다는 투지에 불탔던 어린이. 아직도 다 읽으려면 갈 길이 멀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악셀 하케 지음
장윤경 옮김
쌤앤파커스

몇 주 전에 목격한 일이다. 내 앞에 있던 차의 뒷좌석 창문이 열리더니 길고 예쁜 손가락이 창밖으로 작은 쓰레기들을 버리는 것이었다. 굉장히 고가의 차종이었고, 운전기사까지 있는 것을 보아하니 돈이 많은 사람임이 분명해보였다. 한참을 이것저것 버리던 손가락이 더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좋은 차안에 두고 싶지 않은 쓰레기 처리가 끝난 모양이었다. 문득 이 장면이 생각나서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자기도 할 말이 많다는 얼굴이다. 좋은 옷과 구두를 신고 생김새도 멀끔한 사람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외모만 보고서 지레 기대를 했던 친구는, 종업원들을 대하는 그의 무례한 태도며, 중간중간 사용하는 비속어 때문에 더이상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싫을 정도로 진절머리가 났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품위가 상실된 언행과 현상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그저 한 번 몰아치고 마는 파도가 아니라 온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광란의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 다수의 인터넷 공간을 점령한 모욕과 거짓말은 일상이 되었고 이미 우리는 그곳의 어조에 익숙해져 버렸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격렬하고 거친 논쟁을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정치적 논쟁에서는 선을 넘는 경우가 파다한데, 여기서 말하는 선은 품위 혹은 예의와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기존의 정치적 논쟁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천박함이 도처에 널려 있으며, 이는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악셀 하케의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나타나는 무례한 사례들에 접근하면서 다소 건조한 어투로 품위 있게 문제를 제기한다. 제임스 본드가 멋지게 악당을 제거하듯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질병이 되어가는 무례함과 천박함을 싹 도려낼 해결책은 없다. 다만 이 책은 제목처럼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여러 방법적 논의를 해간다. 비법 전서가 아니라서 오히려 실망스럽지 않다. 예의를 지키고 호의를 베푸는 것이 행여 손해를 입는 일은 아닌지, 혹시 이용을 당하지는 않을까 두렵기까지 한 이 시대, 자칫 약해질 수 있는 자긍심과 배려심에 단비를 내리고 용기를 불어넣는 책이다.
사회의 무질서와 무례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독야청청 살아간다. 그러나 누군가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뒤에서 이를 지지하며 함께 노력하는 수많은 동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정한 품위는 나혼자 남들과 다르다는 기만에 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서로 언제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품위가 아닐까. 카뮈가 “부조리한 운명에 대항하여 싸우려면 사람들이 연대 의식을 되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듯이 말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당시에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극히 기본적인 품위와 존엄이 요구되었다. 카뮈에게 인생철학은 그저 하나의 시민이자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존엄과 명예를 갖추는 것이었다. 그는 ‘한 인간이 그 무엇도 하지 않고’ 무심코 시대를 지나친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여겼다.”
악셀 하케는 카뮈 평전에 쓴 라디쉬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는 우리 현실의 무례함을 분명히 자각하고 인정하는 자세야말로 품위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가 미덕이라 여기는 가치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자기 확신을 낮추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자고 말한다. 결국 서로에 대한 비방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례한 사회에서 품위 있는, 다시 말해 인격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일 테다. 그것이 나에게 다소 손해라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인간적 연대와 더불어 공존을 택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