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October, 2020

삶을 잘 모르겠다 싶을 땐

Editor.이주란

『식물의 책』
이소영 지음
책읽는수요일

내가 처음 『식물의 책』을 접한 것은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해서였다. 생업과도 관련이 있어 이미 몇 권의 세밀화 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사실 그걸로도 충분했지만 괜히 새 책을 사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식물의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림보다도 다양한 식물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마음을 움직인 민들레와 틸란드시아와 리톱스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1. 민들레
얼마 전 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만날 일이 있었다. 소설을 배우는 학생들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한 학생이, 혹시 어릴 적 다니던 곳에 아직도 가곤 하는지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 “다 사라졌거든요.” 학생들은 “아아” 하며 탄식했다.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옆 동네에 아파트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두 살 무렵엔 흙으로 매꾼 평야에 완전한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었다. 당시 개발이 뭔지 잘 몰랐던 나는 서른이 넘어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친구들의 집이 그때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과 이십여 년 전 낯설었던 풍경들이 이제는 옛 모습이 되었다는 것. 나는 그렇게 자랐고,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은 더이상 그곳에 살지 않는다. 내가 먼저 이사를 했고, 몇 년 전엔 엄마까지도 예전에는 소나무밭이었다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나는 종종 엄마와 산책을 하고, 그럴 때면 가만히 옛 기억을 떠올린다.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을까 싶을 정도로 이십여 년 전과 똑같은 아파트가 보인다. 산책을 하며 가장 자주 보는 식물이 바로 민들레다. 도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고 땅을 메꾼 곳에서도 민들레가 자란다. 보도블록 사이 피어난 민들레를 보면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요즘 같은 가을에 보이는 민들레들은 서양민들레일 것이다. 토종 민들레는 봄에만 꽃을 피우고 서양민들레는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운다고.
2. 틸란드시아
사람들의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경계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면서 식물들의 친절은 아주 제대로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틸란드시아를 키운 적이 있다. 몇 년 전, ‘식물의 방’이라는 곳에 작은 전시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주인장이 작업도 하고 식물을 직접 키워 파는 공간이었다. 나는 전시를 본 뒤 그곳에서 틸란드시아를 구입했다. ‘인테리어 효과가 있는 데다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도 잘 죽지 않으며 공기 정화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결국 사람들은 별로 많이 주지 않으면서도 많이 받을 수 있는 식물을 원하는 것 같아요. 바로 그것이 현재 우리 인간이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일 거고요.”그런 사람이 바로 나였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이제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임을 이 지면을 빌어 다짐해본다.
3. 리톱스
틸란드시아의 인기가 높아지던 때, 다육식물을 키우던 사람들이 리톱스라는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 화훼디자인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재배 조건도 까다로운 데다가 생체 크기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리톱스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고, 저자 역시 리톱스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좋아하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리톱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돌을 닮은 리톱스는 실제 돌 위에서 살기도 하고,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호색을 띤다고 한다. 또한 수분을 저장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관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나는 리톱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집에서 리톱스를 키울 때는 자생지인 사막의 환경과 비슷하게 만들어주면 됩니다. 사실 모든 식물이 그러한데요, 식물을 키울 때 재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싶으면 그 식물의 원산지의 환경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몇 번 이런 식으로 기간을 정해두고 무조건 물을 줄 것이 아니라, 현재 온습도를 고려해 최대한 식물의 자생 환경과 비슷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식물을 키우는 일은 무언가를 찬찬히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식물이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마음을 다해 가만히 보다 보면 문득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거라 믿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어쩐지 잘 모르겠는 것만 같은 지금 나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