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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0

마들렌느가 이끄는 대로

Editor.지은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민음사

내 기억 속 가장 싫었던 순간이자 좋았던 시간은 중학생 시절이다. 싫었던 이유는 학교에 다니는 일이 너무도 재미없었고 담임 선생님의 틀에 박힌 잔소리, 성에 막 눈뜨기 시작한 남자아이들의 음란한 눈빛과 농담들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반에 한 덩치 크고 뚱뚱한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을 조롱하거나 교묘하게 괴롭히곤 했다. 훗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을 때 그 아이가 싱클레어를 괴롭히던 소년 프란츠 크로머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그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변했을까? 속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개과천선했을까 아니면그 간사하고도 불량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약자를 교묘하게 괴롭히는 폭군이 되어 있을까? 왜 그런지 1910년대의 유럽 소설들을 읽을 때면 그보다 한참이나 나중인 1980년대 후반의 나의 유년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애석하게도 데미안 같은 신비한 인물은 우리 학급에는 없었지만.
자, 이제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행복했던 나의 중학생 시절을 떠올려보자. 작은 집에서 2층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후 나는 내 방을 2층으로 배정받고 무척 기뻐했다. 작은 발코니가 옆으로 나 있었고 집의 모서리에 위치했기에 방의 두 벽면이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점심시간이 되면 겨울철에도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 창을 통해 쏟아지곤 했다. 여름철 초저녁에 창문을 모두 열어놓으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저녁에 창을 열면 앞집의 낮은 지붕 위로 곱게 쌓인 눈 구경도 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그 방에 커튼을 달아 주시지 않았다. 내 방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도 멋진 장소였고 수채화 도구들, 만화책과 잡지, 머리핀, 예쁜 천 가방 같은 온갖 보물들이 가득 쌓인 나만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그 방 생각을 하면(물론 이제 와 그 방을 정말로 방문하게 된다면 실망하거나 아무 감흥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나의 가장 좋았던 시절,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행복했던 시절이 떠올라 이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그 방이 진정 좋았던 이유는 방을 둘러싼 공기 때문이었다. 겨울에 이불 속에서 귤이 한가득 들은 비닐봉지를 옆에 두고 귤을 하나씩 까먹으며 들었던 아하A-Ha와 뉴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노래들, 온 방안에 퍼져있던 향긋한 귤 냄새, 비 오는 날이면 어머니가 부엌에서 만드시던 부침개의 고소한 냄새와 지글지글 익는 소리, 푹 빠져 읽던 순정만화 만화책까지. 그 어떤 다른 딴짓에 바람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행복했던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생각나는 것이다. 즉, 나는 싱클레어처럼 두 개의 세상을 살았던 것 같다. 불행하던 학교의 세상과 행복하던 내 방의 세상을.
대학생 때 우연히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를 보게 되었다. 당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던 터라 학교에 오시는 비디오 아주머니에게서 프랑소와 트리포, 장뤽 고다르, 구로자와 아키라 같은 예술영화 거장들의 작품을 비디오카세트테이프로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시절 한 친구가 〈러브레터〉를 자취방에서 같이 보자고 했다. 영화 속 너무도 아름답고 애잔한 사랑 이야기의 감동과 더불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중학생 남자 후지이가 학교 도서관의 커튼이 흩날리는 창가에서 읽던 그 책, 영화 〈러브레터〉가 소환한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여자 후지이는 어린 시절의 사랑을 발견했다.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 무작정 책을 샀다. 당시 10권으로 되어있던 책을 모두 살 돈도 없었거니와 당장 다 읽을 엄두도 나지 않아 우선 1권을 샀다. 책을 읽는 초반,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평온한 프랑스 부르주아 가정의 일상과 더불어 그들의 물건들이나 방안에 감돌던 빛, 공기 등을 뚜렷하게 느껴지는 듯한 기쁨이 쏠쏠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나는 위대한 장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마들렌느 장면.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도대체 마들렌느가 무엇이길래 그런 맛을 불러일으켰을까 생각하며 길게 늘어지는 프루스트의 문장들을 읽어나갔다. 첫번째의 그 느낌이 너무 황홀한 나머지 두번째와 세번째 모금을 시도하지만 그 찰나의 소중한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화자는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것이 퇴색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는 왜 그 느낌이 그리도 좋았는지 생각해 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 실제로 프티트 마들렌을 맛보기 전 눈으로 보기만 했을 때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페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책 속의 마들렌느가 나의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을 소환시켰고 이후 크게 감명받은 나는 마들렌느를 먹으며 나 또한 1910년대의 프랑스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내 지난 행복했던 과거, 귤 냄새 진동하고 햇살이 가득하던 환한 내 방, 좋아하는 팝스타의 음악이 흐르고, 아무 걱정 없이 현재를 만끽하며 언젠가 멋진 사랑이 내게도 찾아올 거라 상상하던 시절. 얼굴에 나던 여드름이 인생 최대의 위기라고 여기던 그 귀여운 시절. 그때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때의 추억이나 느낌이 문득 그리워지면 나는 귤껍질을 까며 알알이 터지는 귤 냄새에 흠뻑 취하곤 한다. 너무 거세게 들이마셔도 안되고, 또 그 향이 약해서도 안된다. 귤에 따라 살짝 다른 향을 내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안된다. 오로지 옹골찬 놈들이 반짝 흩뿌리는 향이어야만 나는 과거의 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느가 그를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이끌었듯이 우리는 어쩌면 모든 순간에 결정적으로 오감을 자극하던 무언가를 가질 수 있다면 과거의 추억 문이 다시 열리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것들은 역시 매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만끽할 때에만 계속 추억으로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다 마들렌느 같은 열쇠가 나타나 그 문을 열게 해 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