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18

개소리란 무엇인가

Editor. 박소정

병치레 때문에 각종 건강 정보를 두루 섭렵 중.
집사가 될 날을 고대하며 동네 길고양이들과 교감 4년 차.
삶의 균형을 위해 생각은 적게, 몸은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필로소픽 출판사

사실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건 몇 달 전이었다. 누군가 필터링 없는 말을 쏟아내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은 날 우연히 눈길을 끄는 제목의 이 책을 발견하게 됐다. 충동적으로 장바구니에 담은 뒤 한참 잊고 지내다 최근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보니 이 책이 번뜩 떠올라 냉큼 서점에 달려갔다. 원제가 ‘ON BULLSHIT’인 이 책은 저명한 도덕철학자가 쓴 철학서로 우리나라에서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독특한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역자는 처음엔 ‘헛소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철학책에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센스Nonsense와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이유와 더불어 약간은 부적절하고 강한 단어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다소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누구도 개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서 저자는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한 사실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참고할 문헌이 없는 웃지 못할 상황에서 그는 원점으로 돌아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펼친다. 여기에서 Bullshit은 헛소리, 허튼소리, 엉터리, 실없는 소리로 번역된다. 참고로 국어사전에서 개소리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이라고 풀이된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국어사전의 정의가 더 속이 시원하다. 여튼 저자는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개소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이 소리가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회에서 정확히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철학적 고찰을 해나간다.
그는 같은 단어로 분류되기도 하는 개수작과 개소리를 『비트겐 슈타인의 회상록』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통해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는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장인들은 ‘매 순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신들이 계셨’다고 여겨 허튼수작, 즉 개수작은 부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공을 들여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두 단어는 늘 ‘부주의’하거나 ‘제멋대로인 방식’에서 나온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쉽게 얘기하자면 개소리를 할 때 필터 없이 쏟아지는 경우는 많아도 심혈을 기울여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공들여 만든 개소리는 엄연히 존재한다. 일상보다는 광고와 홍보영역과 관련된 분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정밀하게 계산된 정치인의 말이 있다.
‘허세’를 주된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개소리는 거짓말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허세 부리는 개소리’라는 판에 박힌 문구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사회는 거짓말보다 개소리에 좀 더 관대한 편이다. 거짓말은 모욕감과 분노라는 강력한 감정을 주지만 개소리는 불쾌함이나 거슬리는 정도에서 끝나는 게 보통이다. 저자는 이 이유를 기획 의도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거짓말은 허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기만하려는 의도가 다분하지만, 개소리는 꼭 허위를 말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진위 따위엔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점 때문에 때론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설거지는 여자가 할 일” “멕시코 이민자는 범죄자” 등 동서를 막론하고 정치인이 내뱉는 말은 일종의 마케팅으로 주목을 끌거나 특정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진릿값에 거의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날 연구가 전무하기에 과거에 비해 오늘날 개소리의 양이 늘었다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다.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이를 접할 수 있는 경로가 확대되고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할 기회는 많아지는데 관련된 지식의 한계가 있는 이들, 대표적으로 공인의 삶에서 개소리의 가능성이 커졌다고 본다. 바야흐로 개소리 풍년의 시대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개소리는 눈살 한번 찌푸리고 말면 그만이다. 하지만 국민을 대표해 앞으로 5년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나온 후보자들의 목소리는 매의 눈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소리로 본질을 흔들어 놓는 자는 누구인지, 그 와중에 침착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누구인지 가려 투표로 응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