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18

소설 속에 인물을 던지는 작가, 히데오

Editor. 김지영

정도를 막론하면 일주일 중 나흘은 술과 함께한다.
술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행복해진다.
가끔 내 주업이 에디터인지 프로알코올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버라이어티』 오쿠다 히데오 지음
현대문학 출판사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시원하다. 개인적으로 박하사탕처럼 약한 매운맛을 내는 시원한 소설을 선호한다. 내게 그의 소설은 언제나 옳다. 가끔 주인공이 남성 우월주의라 울컥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조차 무언가 매력적이라, 좋아한다. 오쿠다 히데오를 처음 접한 건 겉멋만 부리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대입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과외나 단과 학원을 늘리던 무렵, 나는 모든 학원을 그만두고 글쓰기 교습소를 다녔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작정 다니기 시작한 교습소에서 한계를 맛봤다. 교습소에서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에 비해 내 독서 수준은 (그 폭에서) C급이었다. 한국 소설만, 그것도 순수문학만 주구장창 읽었던 나는 우물 안 개구리만도 못했다. 독서의 폭을 넓히기 위해 처음 접했던 해외 소설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였다. 처음 해외소설을 접하는 내겐 왠지 모르게 일본 소설이 가장 만만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학교 도서관에서 무심코 고른 책 한 권으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소설 속 인물은 제각각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오롯이 인물들의 성격만으로도 서사가 이뤄진다.그런데 『소문의 여자』를 읽고 더는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작품성이 아닌 취향의 문제겠지만, 『공중그네』 『인 더 풀』처럼 서사가 거침없는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흥미가 없었다. 그 후 대략 3년간은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신간 소식을 접해도 마음은 전과 달랐다. 이미 흥미를 잃은 후였다. 그러다 얼마 전 신간 정리 중 그의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구매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버라이어티』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오쿠다 히데오 애독자와 초심자 모두를 위한 이야기’라는 광고 문구 때문이었다. 이 스페셜 작품집은 단편 6편과 콩트 1편, 대담 2편이 담겼다. 15년간 근속한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광고 기획사를 차린 38세 나카이의 창업기를 그린 「나는 사장이다!」 「매번 고맙습니다」, 혼잡한 귀성길에 운전대를 잡은 아내 히로코가 무례한 히치하이커들을 줄줄이 태워주며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을 그린 「드라이브 인 서머」 등 단편은 기존 오쿠다 히데오의 특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인물에게 확실한 성격을 부여한다. 그리고 성격을 부여한 인물들에게 발언권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나카이’의 창업기를 다룬 두 단편 속 나카이의 아내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나카이의 아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수익이 불확실한 사업을 크게 벌이려는 남편 때문에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사업 실패에 관한 책을 읽거나 끊임없이 집안 청소를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표현한다. 그렇다고 소극적인 인물도 아니어서 남편에게 불안한 마음을 담아 직접 충고를 건네기도 한다. 그의 단편 소설 속에는 매력적인 인물이 한 명씩 등장한다. 외형이 육감적이거나 성격이 독특하다거나 하는 인물들이 사건을 일으킨다. 덕분에 긴장감은 배가 된다.이 책에는 오쿠다 히데오가 그대로 담겨있다. 소설적 특징은 물론이고 인간 히데오, 소설가 히데오를 보여주는 대담 역시 좋은 읽을거리다. ‘웃음의 달인 뒷이야기’라는 대담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본인만의 창작론을 내비친다. 그는 소설을 쓸 때 플롯을 짜지 않는다고 말한다. 머릿속으로 뭔가를 구상하고 컴퓨터 앞에 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전원을 켜고 화면을 가만히 노려보면서 한 줄을 쓴다는 그의 말은 충분히 히데오답다. 그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그는 소설 속에 상황을 만들고 인물을 던진다. 그럼 인물들은 이야기를 끌어간다.히데오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를 알기 가장 적합하다. 여러 단편이나 장편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도 대담을 통해 풀 수 있다. 책 소개에 적힌 문구는 광고용 과대 포장이 아니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사람도, 이미 그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의 책을 단 한 번 읽어본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책이다.